알 수 없는 인생
창밖에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글을 쓴다.
나는 지금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오늘은 그 선택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다.
내일은 아버지의 첫 기일이라 하루 먼저 강릉에 내려왔다.
겨울바다의 차가운 향기가
1년 전 아빠를 떠나보내던 날의 감정을 고스란히 싣고 왔다.
바다는 언제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파도를 떠나보내지만
나는 그 앞에서 오래된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어릴 적 우리는 자주 횟집에 갔다.
창밖으로 파란 바다가 펼쳐지고
상이 모자랄 만큼 스끼다시가 차려지던 테이블,
싱싱한 모둠회와 해산물,
그리고 마지막에 꼭 등장하던 얼큰한 매운탕.
그 자리에는 늘 술이 있었고,
아빠는 그 술을 천천히 그러나 깊게 마셨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술이 추억이 되고 가족이 되고 위로가 되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회를 무척 좋아한다.
명절이면 아빠와 단골 횟집에 앉아
바다를 보며 소주를 기울이던 시간이
내 삶의 하이라이트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상하게 어제부터 술에 대한 갈망이 거세게 올라왔다.
배를 채우고, 단 것을 먹고, 양치를 해도
그 갈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몸이 아니라 가슴이 술을 찾고 있었다.
그때 문득 아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넌 아빠 닮아서 술 마시면 인생 망한다."
그 말은 경고이자 예언처럼
내 안에서 오래 머물러 있던 문장이었다.
나는 그 말을 붙잡고 하루를 버텼고 밤을 넘겼다.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숨이 고르게 쉬어졌다.
지금에 와서야 알겠다.
내가 원했던 건 술이 아니라
아빠와 함께 바다를 보던 그 시간,
아무 말 없이 잔을 기울이던 그 온기였다는 걸.
바다를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특히 파도치는 모습을 좋아한다.
부풀어 오르다 부서지고,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밀려오는 파도.
단 한 번도 같은 모양이 없는 그 불규칙함이
내 인생을 닮아 있는 듯하다.
예측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아빠는 몸으로, 나는 상실로 배웠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어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다.
나는 그동안 후회와 죄책감으로 아빠를 붙들고 있었고,
그 틈으로 술이 다시 들어오려 했던 것 같다.
이제는 놓아주려고 한다.
술도, 후회도, 그리고 아빠도.
아마 아빠는 내가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더 보고 싶어 할 테니까.
아빠의 죽음은 내게 하나의 선택을 남겼다.
무너지는 쪽이 아니라 버티는 쪽으로 사는 선택.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이라면,
오늘 하루처럼 술 대신 파도를 마시며
명랑하고 기쁘게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보려 한다.
이 결심으로 금주 129일 차를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