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에 대하여

가스라이팅

by 중독작가

2026년 2월 10일 금주 151일 차.


술이 빠진 삶이 이제는 익숙해질 법한데,

아직도 그 자리는 쉽게 비워지지 않는다.

가끔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갈망이 몰려온다.
다행히도 나는 그 갈망에 대처하는 나만의 방법들을 조금씩 터득해 왔다.

먼저,
여태껏 힘겹게 버티고 참아온 시간들을 되새긴다.
그 시간들은 이미 나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상한다.
만약 이 유혹에 무너져 술을 마신다면,
그다음 날 나를 덮칠 후회와 좌절,
스스로를 혐오하며 바닥까지 추락해 있을 나의 모습을.

그다음에는 몸을 움직인다.
팔 굽혀 펴기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당장 손에 잡히는 일을 하며 갈망의 초점을 흩트린다.

마지막으로,
눈앞에 있는 음식으로 허기를 채운다.
배고픔은 종종 갈망으로 위장해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를
동시에, 그리고 집요하게 반복해야
그제야 갈망은 서서히 힘을 잃고 지나간다.

갈망이 어디서 오는지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첫째,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최근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곡이
클라이언트에게 거절당했다.
그 허탈감을 단번에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술의 얼굴로 찾아온다.

둘째, 배고플 때.
맛있는 음식과 함께 마시던 술이 주던 쾌락이
해마 깊숙한 곳에 각인되어 있다가
느닷없이 고개를 든다.

셋째,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인간관계 속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쌓았던 과거의 추억,
그 아련함이 갈망이라는 형태로 되살아난다.

넷째, 남들이 아무렇지 않게 즐기는 모습을 볼 때.
뷔페에서 술이 무한리필로 놓여 있고,
나는 홀로 갈망과 씨름하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누리고 있을 때.
그 외로움은 유난히 날카롭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말을 건다.
어쩌면 가스라이팅에 가까울 만큼, 집요하게.


"나는 술을 마시면 인생이 망가지는 사람이다."

"나는 술을 마시면 객사할 팔자다."


"나는 술을 마시면 사회에서 매장당할 기질을 가졌다."


"나는 술을 마시면 큰 사고를 쳐서
평생을 감옥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가족, 지인, 그리고 유명인들까지.
그들의 삶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그 근본 원인은 대부분 술이었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나는 그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내 삶을 파멸로 이끌 술버릇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중독 전문가들은 말한다.
술을 완전히 끊는 건 없다고.
그저 평생을 참으며 사는 거라고.

그럼에도 적당히 조절하면서 마시면 되지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하나다.

이 가스라이팅이
현실이 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