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머리의 신병들
2006년 1월 3일 군입대 첫날.
사회와 군대라는 낯선 경계에 채 적응하지 못한 빡빡머리 신병들이
저녁식사를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 줄 사이에 나도 있었다.
모두가 같은 머리, 같은 표정이었다. 불안과 혼란이 뒤섞인 얼굴들.
누구도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빨간 모자를 쓴 조교는 칼바람이 살을 에는 겨울에도 로봇처럼 꼿꼿하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몸을 떨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그의 시선이 꽂혔다.
그리고 곧 번호가 불렸다. 얼차려라는 대가는 혹독했고
그곳은 이름도 몸도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하필 그때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처음엔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점점 통제할 수 없는 고통으로 변해갔다.
나는 참다못해 결국 쭈뼛 손을 들었다.
"조교님! 화장실이 급합니다.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조교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안돼. 참아."
그 순간, 거짓말처럼 소변이 멎었다.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
모두가 입을 맞춰 큰소리로 감사 인사를 외쳤고, 식사가 시작됐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양을 먹어야 했기에
사회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음식들이었지만
억지로 입 안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그곳에서는 나보다 규율이 먼저였다.
식사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시간 동안 나는 생각했다.
세상에 지쳐 도피하듯 들어온 이곳이, 어쩌면 더 거대한 감옥일지도 모른다고.
사회에서의 고민들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2년. 그 시간의 무게가 가슴 위에 내려앉았다.
정신없이 하루 일과를 마친 뒤 맞이한 취침 시간.
생활관 바닥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낯선 숨소리들이 어둠 속에서 뒤섞였다.
아무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나 역시 눈을 감은 채 과거를 떠올렸다.
도망치듯 떠나온 사회가, 그 순간에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처럼 느껴졌다.
눈을 떠 주위를 바라보았다.
명문대 출신, 엘리트 운동선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사회에서는 결코 같은 자리에 서지 않았을 사람들.
하지만 그날 밤, 내가 본 것은 단 하나였다.
겁에 질린 멍한 표정을 지은, 빡빡머리의 신병들.
그곳에서는 아무도 특별하지 않았다.
학벌도, 배경도, 과거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냥 다 똑같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