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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시 Jul 31. 2023

슬레이트 자살사건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는 생각

 서울의 한복판에서 한 여자가 두 팔로 슬레이트를 쳤다. 두 팔을 세로로 열고 맞닿는 순간 여자는 풀썩 하고 쓰러졌다. 그 옆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라서 여자에게 달려들었고 쓰러진 여자를 바로 눕혀 어깨를 치고 의식을 확인했다. 하지만 여자는 미동도 없었고 숨도 쉬지 않았다. 체격이 큰 남자가 사람들을 헤치고 여자의 명치 부근에 손을 모았다. 힘을 주어 여러번 흉부 압박을 시행했지만 여자의 몸은 눌리지 않았다. 여자의 몸은 딱딱하고 차가웠다. 남자는 원래 쓰러진 사람의 몸이 그러한 줄 알고 계속해서 흉부를 압박했다. 얼마 뒤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급대원들이 차에서 내려 여자를 들것에 실었다. 들것에 실려가는 여자는 무표정하고 반듯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입을 약간 벌리고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눈동자는 마치 오필리아를 연상케 했다. 이것이 슬레이트 자살사건의 첫번째 사례이다.

 며칠 뒤 여자가 죽었다는 소식이 소셜 사이트로 인해 퍼날라졌다. 이상한 점은 여자의 몸에는 아주 작은 상처 하나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약을 복용한 것도 아니였고 유족들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평소에 운동과 취미생활을 열심히 하며 건강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물론 잘 웃고 사교성도 좋아서 그녀 주변의 사람들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다. 정말이지 그녀가 죽을만한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생채기 하나 없이 깨끗한 그녀이기에 사인을 밝히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유족과 부검의는 그녀의 사인을 찾는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불가사의한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 여자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을 몰랐다. 안그래도 전염병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흉흉한 시기에 그녀의 괴담이 삭막한 도심을 돌았다. 사람들은 정체모를 전염병이라도 퍼진게 아니냐며 점점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는 그녀의 사인에 아주 깊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성슬연의 사망 소식을 들은 것은 닷새 전이다. 그녀와 나는 딱히 깊은 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두 개의 작품을 가지고 있는 소설작가였고 난 그녀의 몇 되지 않는 팬이였다.

 우리는 반년 전 오늘처럼 매미소리가 울리는 밤에 처음 만났다. 그 당시 슬연은 좋은 직장에서 좋은 사람들과 건강하게 지냈다. 심지어 좋은 애인도 있었는데 그 날은 그녀가 실연을 당한 날이기도 했다. 남자친구는 슬연을 두고 바람이 났고 그의 새로운 애인은 그녀의 오랜 친구라고 했다. 그들은 모두 슬연이 20대를 불태우며 사랑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었기에 슬연은 제대로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는 이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아했다. 대화를 나누며 듣는 슬연의 사랑 방식은 내게 다소 낯설었다. 그는 친구를 친구 그 이상으로, 마치 정신적인 유대감으로 묶인 가족 즈음으로 생각했다. 할 말은 몇 번이나 고르고 다듬으면서도 화가 나면 너무 사랑하기에 감히 화를 내기가 어렵고 결국 말을 그만두는 것도 여러번인 것이다. 항상 그에게 맞춰주고 싶고 그 사람에게 1순위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 마음까지 꾹 참는 것이다. 슬연이 느끼는 사랑은 이런 것이었다. 반면 내 사랑은 그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말을 다듬을 뿐 가루를 내 틀에 넣어 굳히며 견고한 말을 만들지 않았다. 또 감정을 참기 보다는 쏟아내는 편이었다. 표현이 거칠었으며 다소 날것의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나의 사랑은 약간의 집착적인 면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유형의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리듯 우리는 서로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가 이성을 잃고 감정에 휩쓸려 내게 비밀을 토로하게 된 원인이리라. 그 날이 지고 우리는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날이 드물었다. 슬연이나 나나 워낙 바쁜 사람이었고 얼굴을 마주보기 보다는 풀린 눈으로 쓰는 장문의 메일이 더 편안했다. 우리는 그렇게 친해졌다.

 친해지며 받는 그의 문장들에는 그의 내면이 조금씩 묻어나왔다. 그는 생각보다 이상하고 똑똑하고 천재같은 사람이었다. 가장 그러했던 점은 그녀가 이 세계를 현실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는 뭔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말하길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너무나 완벽하고 체계적이며 미신적이라고 했다. 우주는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과학적으로 치밀했고 그러지 못한 면들은 단순히 미신으로 매꾸어 완전해져 있다. 인류가 발전해서 이 세계를 한 번 더 알아갈 때마다 자연은 마치 그들에게 눈 감을 것을 권고하듯 시련을 주었다. 알지 말아야 할 것이 알려지면 '자연'은 항상 더 큰 문제를 가져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매끈히 절여지게 만들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그동안 슬연이 말한 것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는 결정적으로 무엇을 찾고 싶은 걸까, 그가 내게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오랜만에 슬연을 만나기로 했다. 그날과 같이 어두운 밤에 모든 걸 털어놓을 어두운 펍에서.


-정아. 이 세상이 매트릭스야.

우리 사이에 인사치레는 없었다. 그는 구석에 앉아 내 신발을 툭툭차면서 말했다. 다행히도 내 신발은 검은색이었고 그는 이미 술잔을 기울이고 온 것 같았다.

-무슨 소리야.

-있지 정아, 그게 말이야. 세상이… 세상이 아니야. 내가 사람이 아니고, 저 나무가 생명이 아닌것처럼. 이 세계는 정말이지 세계가 아니야. 누군가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한편의 기억 일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가 돌리는 시뮬레이션 일 수도 있고, 게임 일 수도 있고, 그러니까 말이야. 이건 정아. 난 내가 사람이 아닌 걸 알아. 아니 사람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걸 알아. 아니, 그러니까……

그의 말은 평소답지 않게 정리되지 않고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그의 말투는 한 없이 진지했는데 표정은 신이 난 과학자 같았다. 분위기와 술에 섞여 그의 느릿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얼굴이 그저 헤롱거렸다.


-정아, 겨울이 되면 나는 이 세상을 나갈거야. 서울의 한복판에서. 보러와도 돼. 너라면 내가 하는 행동에 관심을 가져주겠지? 그러겠지, 그래…

 

 그해 겨울, 서울의 한복판에서 성슬연이 두 팔을 벌려 슬레이트를 쳤다. 나는 그를 보러가지 못했다. 그는 서울의 한복판에서 쓰러졌고 그가 나에게 말해준 장소는 서울의 한복판 뿐이었다. 내가 그를 본 것은 소셜미디어였다. 그가 웃으며 슬레이트를 치고 쓰러지고 세계에 또 다른 미신을 부여하는 과정을 바라봤다. 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안다. 그리고 곧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평소보다 이르게, 늘 그랬듯이 '자연'이 가져오는 거대한 문제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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