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고도 없는 캐나다로 온 이유

취뽀로 시작한 나의 캐나다 적응기

by 느루 모도리


캐나다 땅을 처음 밟았던 2016년 5월.


생애 처음 캐나다를 오게 된 계기는 직장 때문이었는데, 당시 3년짜리 비자가 만료되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진학한 대학원을 졸업한 후, 나는 취업을 위해 원서를 이곳저곳 넣으며 전형적인 취준생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진학한 대학원이 아니었기에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 내 나이는 2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대학원 진학 전 경력이 3년 정도 있었어도, 풀타임으로 다녀야 했던 석사과정을 위해 당시 다니던 직장을 퇴사했던 입장이라 (이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나이를 생각해서라도 빨리 취업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


(+) 여담으로 나는 애초에 뚜렷한 목표를 갖고 석사를 진학했다. 원하는 분야의 시험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매년 공고가 뜨는 게 아니라, 졸업 후 우선은 취업을 한 후에 공고가 뜨면 시험을 봐야겠다고 계획을 변경한 상태였다.


국제관계학인 전공을 살려서 여러 나라의 대사관 채용공고에 원서를 냈고, 그중 캐나다 대사관에 채용되어 캐나다 땅을 밟게 되었다. 친구들 중에 캐나다에서 유학생활을 하거나 이민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이 몇 있는데, 나에게 캐나다는 이 친구들의 얘기로 전해 들은 정도의 친근함을 주는 나라였다. 그래서 대사관 필기시험과 면접 준비를 하며 캐나다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다. 5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업무 특성상 캐나다에 대해 여러 방면에서 심도 있게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대사관에 근무하던 중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된 것이 ‘3년만’ 하던 나의 삶을 많이도 바꿔놓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직장경력 등 여러 방면에서 반 평생 나를 만들어준 나의 생활 터전을 뒤로하고 이민을 결정하는 것이 쉽진 않았을 것 같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남편이 좋아 이민을 소위 멋모르고 어렵지 않게 결정했던 것 같다.


결혼 후 약 1년 만에 영주권을 취득하게 되어*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했다. 사실 영주권이 나오기 전에도 캐나다 연방정부 부처를 포함하여 오타와 (캐나다의 수도인데,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꽤나 있더라)에 기반을 두고 있는 싱크탱크 및 사기업에도 지원을 하고 있었으나, 면접 제의를 한 곳들도 내가 영주권자가 아니고 취업비자도 없어서 채용은 어렵다며 영주권이 나오면 다시 연락을 달라는 답변을 많이 받았다. 캐나다 현지 기관으로 이직하는데 내 체류 신분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 캐나다는 결혼을 한다고 해서 배우자에게 자동으로 영주권이 나오지 않고, 배우자 초청 이민 절차를 통해 신청 및 심사 후 영주권이 나오게 된다. 영주권 취득 기는 다른 에피소드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런 문제 외에도 나는 대사관 업무 특성상 캐나다 연방공무원들과 협업을 할 기회가 꽤 있었고, 한국에서도 공공기관에서 주요 경력을 쌓아왔던 나는 자연스레 캐나다 연방공무원이 되기 위해 여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연을 맺게 된 연방공무원 친구들이나 대사관에서 연방정부로 이직한 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나 스스로 여러 가지 공부와 조사를 하며 지원서를 미친 듯이 제출하기 시작했다.


약 2년간의 노력 끝에 나는 한 캐나다 연방정부 부처로 이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 근무 중이다. 현재까지 한 번의 부처 이동을 했으며 첫째를 출산 후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다. 연방정부 공무원 월급이 대단히 뛰어난 건 아니지만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에는 충분히 좋은 것 같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육아휴직을 짧게는 1년, 길게는 1년 6개월을 쓸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한국과 가장 큰 차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도 제도가 많이 바뀌어 이제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아직도 한국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여전히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고.. 캐나다에서도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물론 있지만, 또 겉으로는 아니더라도 속으로는 탐탁지 않아 하는 상사들도 있지만 내 책상이 없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연방공무원의 큰 복지 혜택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한 번씩 한국이 그리워 향수병이 올 때가 있기도 하지만, 제2의 고향인 캐나다에서 나의 30대를 나름 잘 적응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