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난의 단풍국 영주권 취득기

‘외국인 노동자’의 시간 싸움

by 느루 모도리

영주권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한국에 거주할 때에는 너무도 당연시 여겼던 체류 신분 문제로 마음 졸이는 일이 일상이었다.


결혼을 한 후, 본격적으로 캐나다 영주권 서류 준비를 했다. 캐나다는 결혼을 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영주권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요구되는 서류를 제출해서 심사를 거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업체를 이용하지만, 나는 혼자 힘으로 작성해서 제출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방대한 요구 서류에 어질 하지만,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차근차근하다 보면 괜찮을 거란 생각으로 준비했다. 업체를 이용해도 결국에는 기입 정보 등 내가 직접 서류를 작성하고 오류는 없는지 다시 확인해야 하니 실용적이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배우자 초청 카테고리로 영주권을 신청했기 때문에 캐나다 주정부에서 발급하는 결혼 증서가 필요했다. 북미 지역이 대부분 그렇듯 캐나다도 관공서에서 서류 하나 발급받으려면 한참이 걸렸다 (캐나다에 거주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곱씹어보면 한국이 유난히 빠르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것 같다. 서류를 발급받는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인들이 열심히 산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내가 그 많은 서류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발급되지 않는 결혼 증서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더욱이, 앞선 에피소드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나의 경우 캐나다 최초 입국은 관용여권+외교비자*로 했지만, 영주권을 신청할 때에는 일반 여권으로 신청해야 했다/ 특이 케이스였던 터라, 행여 서류 심사가 지연되거나 서류가 반송될까 불안한 마음에 나의 상황을 설명하는 레터를 별첨 했다.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2개 이상의 여권을 소지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나는 관용여권을 대사관에 제출하여 보관하고 나의 일반여권을 돌려받아야 했다. 그 외에도 최근 10년간의 주소, 최고 학력, 남편과 데이트했던 사진들과 해당 일자 (영주권 취득을 위해 위장결혼하는 사례들이 있다고 한다), 직계 가족 정보, 범죄경력 증명서, 현 직장 정보 등 필요한 정보와 서류가 많아서 두 번, 세 번 꼼꼼히 확인하면서 준비하느라 시간이 꽤나 걸렸다.


* 참고로 지금은 캐나다 정부 규정이 바뀌어 캐나다 내 외국 공관의 현지 채용 혹은 캐나다 영주권자/시민권자 채용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나의 경우처럼 관용여권과 외교비자로 대사관에 채용되는 경우는 없는 걸로 안다.


나에게 해당되는 서류 외에도 남편에게 요구되는 서류 또한 생각보다 많았다. 예를 들면 남편의 캐나다 시민권 증서 (남편은 어릴 때 이민 와서 시민권자다) 원본이 필요했는데, 남편은 꽤 긴 시간 동안 시민권 증서가 필요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 발급받아야 했다. 문제는 이 서류를 받는 데에만 일반적으로 그 당시 기준 1달 이상 걸린다는 것이었다. 내 외교비자가 3년 짜리였는데 영주권을 신청하는 시점 기준에서 한국인이 영주권 발급까지 일반적으로 소요되는 기간이 약 1년이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최악의 경우 휴직을 해야 하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사유를 설명하는 레터를 첨부하여 남편의 시민권 증서를 긴급으로 발급 신청했고, 서류가 굉장히 빨리 집으로 도착해서 놀랐었다 (캐나다는 사유가 분명하고 납득이 되면 일 처리를 빠르게 해 주는 것 같다).


마음 졸이며 한 달 가량이 흘렀고, 마침내 웬만한 책의 두께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두께의 서류를 제출했다. 소위 말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비애가 느껴지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우편으로 보냈기 때문에 트래킹 번호를 받아 배송 상황을 업데이트 받을 수 있었다. 며칠 후 관할 이민국 사무소로 서류가 무사히 배송되었다는 상태 메세지를 확인하고 비로소 조금이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내 신청 서류가 몽땅 반송되어 집으로 왔다. 서류를 준비하던 당시 남편과 함께 검토하며 ‘이건 괜찮겠지?’하고 자세히 적지 않았던 정보 (신청서 작성법에 나와있지 않아 괜찮을 줄 알았다)를 보충해서 다시 제출하라는 레터가 동봉된 채로.. 무려 서류 발송 한 달이 훌쩍 넘어간 때였다. 즉, 한 달 하고도 다시 제출된 서류가 접수될 때까지의 일수만큼의 시간을 버린 셈이 되어버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당시 캐나다 우체국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던 시기라 기약 없는 기다림이 더해졌다. 작성을 하다 보니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서 아직도 아찔하다.


후회를 해봤자 도움이 되지 않기에, 얼른 보충 서류를 준비해 최대한 빠르게 서류를 재발송했다. 이번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서류 심사가 시작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아서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나의 비자 만료일이 다가왔고, 나는 상사들과 인사팀과 서류심사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제때 영주권이 나오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지도 의논했다. 몇 가지 내 상식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안을 제시하는 분도 계셨지만, 나는 조직의 구성원이기 이전에 나라는 ’개인‘과 캐나다라는 ’외국‘의 상관관계에 초점을 둔 나의 생각을 피력했다. 결국, 최악의 경우 무급휴직을 하기로 합의했다.


다행히 내 영주권은 제때 나오게 되어 휴직을 하는 일은 없었다.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을 마음 졸이며 보냈던 나는 드디어 캐나다에서 안정된 체류 신분이 생겨, ‘외노자’에서 벗어난 기쁨을 만끽했다. 이런 신분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처음 느낀 건 차량 번호판*을 바꾸러 관공서를 방문했을 때다. 담당 직원이 “You're one of us now! Congrats!”라며 얘기했을 때, 이제 정말 이 나라의 구성원이 된 건가 싶었다. 여전히 외관상 ’외국인‘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이 얘기는 다른 에피소드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렇게 영주권자로서의 나의 캐나다 살이가 시작되었다.


* 외교비자로 체류하고 있었던 나는 외교 번호판을 사용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