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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스민 Apr 29. 2024

당신은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지난 달이었을까요.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저는 수업을 들으러 학교로 향했습니다. 긴장감과 힘이 잔뜩 들어간 체로 교수님 연구실에 앉아서 앞으로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들었습니다. 저 빼곤 전부 유학생들이었기에 저에게 수업과 관련해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으니 남으라 하셨습니다. 


뭐.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쩌다 그 나이에 직업도 가지지 않고 공부만 하게 되었는지. 이렇게 공부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기간제 교사를 오래 했었는데 임용고시는 다시 치지 않을는지. 여기서 계속 공부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라는 등 다양한 현실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저도 다 아는 이야기였습니다. 친구들이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은행과 대기업에 취업할 때 학부시절 항상 일등이었던 저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임용고시는 아슬아슬하게 자꾸만 떨어져 희망고문이 계속되었고 친구들은 성공하자 변해버렸습니다. 그동안 스스로나 주위로부터 제게 비교당했던 자격지심을 가지고 저에게 마치 앙갚음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아무 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굴 무시하거나 괴롭힌 적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저 열심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정신 차려 보니 계속 실패만 했습니다. 그러다 몸이 아프고 마음도 아파졌습니다. 그렇게 위축된 체로, 너덜너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열심히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심지어 제 자신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제 자신이 가여워 눈물 흘린 적이 숱하게 많죠. 


교수님은 계속 대학원을 졸업하고 어찌 될지 걱정이라며 임용고시를 다시 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다 그래도 결혼했으니 여자는 성공에 대한 부담이 적어서 다행이라 하시다가 따뜻한 보리차를 한 잔 주셨습니다. 


그때까진 교수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제 안의 상처가 기억나 슬퍼져 보리차를 마시며 멍해졌습니다. 차 한잔을 겨우 마시고 일어나려는데 교수님께서 스쳐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야. 너 그래도 열심히 살았구나? 돈 벌면서 공부도 하러 오고. 그 사이 교원자격증도 2개나 땄네."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게. 뭐?'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오래 근무한 저로선 제 조건이 썩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임용고시에 합격해 대학원도 다니고 성과급도 기간제인 저보다 두 배나 받고, 교원자격증도 다 한 두 개는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걸 열심히 한 걸로, 잘한 걸로 인정해 준 것. 그것이 제게 위로였습니다.


꼭 임용고시에 합격해야 열심히 산 건 아니니까요. 


그날 학교에서 돌아와 상담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 순간엔 잊고 있었는데 상담을 하며 열심히 제 이야기를 떠들면서 뭔가 오늘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상담을 하면서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는데요. 오히려 상담이 다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뭘까 생각하다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오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뱉은 교수님의 인정 어린 말에 위로를 받았다는 것을요. 


여러분들도 그럴 것 같습니다. 지금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고, 한 땐 잘 나갔는데 지금은 주저앉아 있다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한 번도 잘 살아본 적이 없다고 느끼는 분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전부 열심히 살았어요.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어요. 지금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노력입니다. 그 많은 상처를 안고도 버티고 있으니까요. 


여러 분은 초등학교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걸 이루어냈는지 모릅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쌓고 있는 중인 겁니다. 제 자신이 보기엔 하찮고 실패한 것일지 모르지만 남이 보기엔 대단한 것일지도 몰라요. 지금 혹시 '나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렇게 됐지. 왜 나보다 못했던 그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위치에 있지?' 하시는 분들 제가 인정할게요.


"그래도 당신은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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