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싫어요

일본 영화 '괴물'

by 쟈스민

이전까진 많은 부분을 참으며 살아왔습니다. 대인관계에서 타인의 미묘한 눈빛, 말투, 표정을 보며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예리한 감정의 센서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독으로 변하였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귀하게 여기고, 무시하고 등을 단번에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로 기간제교사나 계약직원으로 일을 하여왔기 때문에 정말이지 많은 무시와 억울한 일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럴 때면 희망은 조금씩 컨베이어 벨트처럼 닳아 없어지고 저는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졌습니다.


그러다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심리상태에 도달하였을 때 결혼을 하였습니다. 저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과의 결혼은 저를 끌어올려주지 못했고 우리는 함께 하향평준화 되어버렸습니다. 저로 인해 겪어본 적 없던 억울한 일을 목격한 배우자는 저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했고 저는 '나는 괴로운데 너는 즐거워?'라는 시기와 질투에 매몰되었습니다. 정말 나쁜 마음이지만 상처가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상처뿐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최근 제가 박사공부를 하며 옮겨다닌 이런저런 직장과 모임 등에서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할 때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전까진 참지 않을 용기와 자신도 없었거든요. '내가 이 학교에서 반항을 하면, 학부모와 싸우면, 동료교사와 싸우면, 나는 내년에 이곳에 없다. 그럼 나의 경력은 단절될 테고 그럼 나는 나를 건사하지 못한다.', '이 사람들에게 화를 내면 나는 친구가 없다.' 이런 마음으로 참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나를 책임질 수 있는 배우자가 생기자마자 참을 수 없어졌습니다. 제 안의 이 분노와 경멸이 무엇인지 어떤 감정인지 알아버렸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인정받지 못해 삐뚤어진, 살벌한 분노였습니다.


몇 달 전 학부모들이 말도 안 되는 갑질을 하였을 때도 학교는 소모품 기간제교사인 제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선 제게 소리 지르고 아프면 담임도 그만두라고 막말을 내뱉는 학부모들을 응징해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는 관리자에게 혼만 나고 학부모들에게 굴욕적인 사과를 해야만 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이, 단지 그들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죄로요. 기간제 교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분노로 치가 떨렸고 인간혐오에 빠져 지금도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인 저는 휴직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싫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좀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괴롭힙니다. 그럼 괴롭힘 당한 사람은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있는 사람에게 언젠간 분노를 쏟아낼 겁니다. 그래서 시민혁명이 발생한 것이겠지요.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고 본능대로 역사는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터져버리던, 다른 사람에게 나의 분노를 터뜨리던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요. 좋은 사람도 있었을 텐데 기억이 나질 않아서 슬픕니다. 저를 괴롭힌 그들이 괴물인지, 괴롭힘에 삐뚤어진 제가 괴물인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작곡가의 aqua라는 주제곡으로 유명한 일본 영화 '괴물'을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이런 제 마음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누가 괴물인가?'에 대한 질문과 인간혐오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 주었어요. 사람이 싫어진 제게 유일한 위로였습니다. 사람이 사람 없이는 못 산다는데 인간은 인간을 혐오할 수밖에 없다니 아이러니로 가득한 우리는 정말 야누스 같은 존재입니다.


인류애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사람이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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