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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삼 Jul 16. 2020

라티노의 괜찮다는 말을 곧이듣지 마세요

3474m 바루 화산 정상에서 보낸 하룻밤 1





라티노의 괜찮다는 말을

곧이듣지 마세요



회사가 끝난 두두는 펍에 회사 동료랑 맥주 한 잔 하기로 했다고 날 불렀다. 밤의 맥주, 외식, 늘 솔깃한 제안이다. 집에서 대충 있던 모양새가 티가 안 나게끔 괜히 귀걸이도 걸고, 청바지에 로퍼를 신고 밖으로 나섰다. 후텁한 공기의 우중충한 야외 자리를 지나서 실내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두두와 빅터 두 남자 신나게 회사 뒷담을 풀면서 오백 몇 잔을 이미 비워낸 모양이었다.

"헤이 빅터 꼬모 에스따스?( 안녕? 잘 있었지? )"

"헤이 세히 비엔 뚜?" ( 좋아, 너두 별일 없지?)


평범한 안부와 포옹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빅터는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참을 두두에게 토로를 했다. 그들 회사 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외인으로서는 그냥 동조를 하며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무거운 이야기가 끝나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이럴 때 가장 효과 좋은 아이스 브레이커를 던졌다.  

"빅터, 우리 보께떼로 여행 간다~ 너 가본 적 있어?"


그는 외국인 커플의 파나마 국내 여행 소식에 반가워하면서 자기가 갔던 보께떼 여행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꺼냈다. 보께떼에 파나마에서 가장 높은 화산이 있는데 프랑스인 여자친구와 그 산을 등반했고, 정상까지 7시간 정도 걸리는데 경치가 엄청 아름답다는 이야기, 정상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시 걸어서 내려오려고 했는데, 자연현상이 너무 마려워서 하행 픽업트럭을 사서 급하게 내려갔던 해프닝으로 마무리했다.

"여친과 산 정상에서 맞는 급똥이라니. 그래도 재밌었겠다. 많이 힘들어?"

"음... 좀 힘들긴 한데 괜찮아, 괜찮아."



Está bien. 라티노의 괜찮다는 말은 절반만 믿기. 라틴 대륙에서 사는 우리 커플의 발견한 생활팁이었다. 절대적으로 나쁜 정도가 아니면 '괜찮다'라고 표현하는 낙천적 언어습관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동북아시아의 남한에서 온 우리와 표현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이게 está bien 이라구? 아~니야, 이건 배드, 말Mal이야!' 두두는 동료들에게 농담을 던지곤 했다.


또한 빅터가 어떤 친구인지 조금 안다면 그가 얼마나 mal말이란 표현을 안 쓸 타입인지 상상이 갈 것이다. 그는 20대 중반의 중미의 인기있는 남자상으로 꼽힐 만한 외모와 몸매 그리고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터질 것 같은 셔츠에서 마치스타(마초)의 향이 풍겼지만 그렇게 으스대지는 않았고, 자연스러운 매너와 유쾌한 성격을 가진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인스타엔 많은 여자 '친구들'과의 사진, 해변에서 근육질 몸을 드러낸 사진들이 올라가 있었다. 우린 그를 '건강한 젊은이'라고 불렀다. 그런 그가 여정이 힘들었다고 쉽게 토로할 리 없었다. 아니, 저 정도면 힘들다고 충분히 어필한 셈이었다.



술기운이 오르면서 물아일체 낙관적 성격도 물들었는지 생각 없이 '오케이! 우리도 가자!' 하게 된 것이다. 선천적 부정주의자, 어떤 질문에도 '아니', '그건 아니지'로 대답을 시작하는 두두마저 그의 반응을 기다리는 두 낙천 주의자 앞에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케이, 가자! 아, 힘들 것 같은데~'

그렇게 나머지 술자리는 화산 등산길에 대한 조언을 들으며 끝이 났다.













보께떼에서 우리가 묵은 숙소는 그야말로 Airbnb가 추구하는 비전 그 자체였다. '농장형 숙소를 체험해보세요.' 큰 부지 대부분은 소와 말들을 위한 너른 풀밭이었고, 차로 한참 들어가면 언덕 위에 집 한 채가 나왔다. 집 주위로 울타리가 쳐져 있는 모습이 농장으로부터 사람의 집을 격리해 놓은 모양새였다. 집의 입구엔 큰 작업장이 있었고, 현관을 들어가면 그들의 탁 트인 거실이 나왔다. 농장의 주인은 미국인 은퇴 이민자 커플이었다.



우리가 호스트에게 며칟날 밤은 숙소에 들어오지 않고 산 정상에서 잔다고 했을 때 반응은 단순했다. '오우!' 그리고 걱정되는지 장비는 어떻게 갖추고 가는지 물었다. 우린 이번 여행길에 노베이에서 20불짜리 텐트와 10불짜리 침랑을 샀다고 했더니, 다시 '오우.' 이번엔 좀 다른 종류의 탄식을 터트렸다. 이 지역 철물점 대형 체인인 노베이는 대체로 언제 고장 나도 이상할 게 없는 싸구려 제품들을 판매한다. 10불짜리 랜턴을 구입했을 때, 상점을 나오며 전원을 켜보니 전구가 몇 군데 나가 있었다. 바로 교환을 요청했고, 친절한 직원과 함께 랜턴이 있던 선반으로 갔다. 그녀와 나 둘이서 6개를 집어 든 끝에 제대로 불이 들어오는 하나를 찾아냈었다.

그러니, 그럴싸한 용품 하나 없이 그 산에서 캠핑을 한다는 게 걱정되었던지 주인 아저씨는 마을에서 비닐 몇 단을 끊어서 텐트 아래에 깔라고 당부하셨고, 주인 아주머니는 당신의 등산 스틱을 빌려 주셨다.










우린 새벽같이 숙소를 나섰다. 바루 화산 국립공원, 국립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입구엔 작은 초소 하나가 있었다. 관리 직원은 오간데 없이 닭들과 강아지 한 마리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과연 차를 이곳에 두고 하룻밤 사라졌다 돌아와도 될 것인가. 걱정이 됐다. 지나가던 아저씨는 경비원이 마을에 음식 사러 가서 없을 거라고 알려주시며, 주차 저기 해, 여긴 도둑 없어~라고 나를 안심시키셨다. 우린 흰둥이를 나무 그늘 아래 대놓고 드디어 산으로 들어갔다.


 

바루 화산은 파나마 북부에 위치한 화산이며,
높이 3474m로 파나마에서 가장 높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정상에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한 번에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스위스 아니야?' 파나마 시티에서 온 사람의 감상평



절경 속에  풀 뜯고 있는 가장 행복한 양들




입구에서 정상까지 12km 거리. 첫 3 km 구간은 몸도 마음도 그저 가벼웠다. 비가 올까 봐 전날 밤까지도 걱정한 것 치고는 하늘은 물감 칠해 놓은 것처럼 파랬다. 산 아래 펼쳐진 마을 경치를 보며 파나마의 스위스 아니냐며 제법 산행의 즐거움을 느꼈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골짜기가 울리는 소리가 아래서부터 점점 가까워졌다. 차가 올라가는 소리였다. 적십자라고 쓰인 픽업트럭에 무차초(청년) 4명이 타고 있었다. 부에노스 디아스! 손을 흔들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트럭은 우리 옆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무차초들은 창문을 열고 팔은 반쯤 뺀 채로 뒤 트렁크를 가리키며 '타고 갈래?' 라고 물어왔다.

순간의 정적을 깨고 '아니 괜찮아 걸어가고 싶어, 정말 고마워!'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나 말고 내 아드레날린이. 이제 막 걸으며 탄력 받은 몸의 세포들은 아드레날린을 막막 뿜어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방정맞은 아드레날린은 얼마 못 가 로그아웃하고 말았다.

'오빠, 기회의 신은 앞 머리숱은 풍성한데 뒷머리는 대머리래.' 눈 앞에서 사라져 가던 적십자 픽업트럭의 뒷모습이 아른거렸다.









'빅터 말이 맞네. 이 길을 잃어버릴 수는 없겠다.'

본디 등산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는 정상까지 장비를 실어 나르기 위한 도로인지라 길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로 뚫어 놓은 듯했다. 다시 말해 경치나 쉬는 장소, 난이도 따위는 고려사항이 전혀 아니었다. 경사가 심한 오르막은 자갈과 돌, 바위가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었다. 트럭이 오르내려서 길은 심하게 파여 오프로드 트럭도 길 가장자리로 겨우 피해서 지나갔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힘든 길이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자갈이 굴러 미끄러져 번번이 헛디딤질을 했고, 금세 발이 피곤해졌다. 제대로 된 등산화를 신고 있었던 게 참말 다행인 일이었다.



길은 S자로 끝없이 이어졌다. 굴곡진 길이 좌나 우로 꺾어지는 모퉁이를 목표로 걸어 올라갔다. 모퉁이 끝은 숲에 가려져서 다음 진로 방향이 보이지 않곤 했다. 그래서 모퉁이에 이르러 다음 구간을 볼 때, 이번엔 좀 더 편하길 기대했지만 길은 갈수록 더 험해지기만 했다. 분명 처음엔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언젠가 모퉁이에 이를 때까지 말이 없어졌다. 길의 상태를 보고 기운 없이 웃다가 잠깐 쉬었다 가자 말하고 길가에 퍼질러 앉길 반복했다.



달콤한 휴식. 서로의 등짐에서 1L 물통을 빼내 마른 입술을 축이고 마이쭈, 초코바, 싸구려 캔디로 피로를 달랬다. 그나마 물은 마시고 나면 가방 무게를 줄일 수 있단 게 희망적이었다. 올라갈수록 가방 무게의 압박이 느껴지던 차였다. 전날 밤 슈퍼에서 두두가 산 무지개색 사탕은 보기보다 훨씬 맛있었다. 맛 이상으로 먹을 때마다 HP가 채워지는 포션 같았다. 싸구려 사탕을 왜 사냐고 구박했던 게 무안해질 정도였다. 보병 만기 전역 두두는  '행군할 때 딱 이런 싸구려 사탕이 진짜 맛있어' 라며 뿌듯해했다.




 절반 이상을 지나고 시간은 정오가 넘었다. 맑던 하늘은 언제부턴가 하얗고 뿌예졌다. 주변 숲은 어느샌가 축축한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멀리서부터 안개가 스멀스멀 일면서 우리가 있는 쪽으로 내려왔다. 금방 안갯속에 갇혔다. 가방에서 준비한 여벌 옷을 꺼내 입었다. 레깅스와 티셔츠 위에 등산복 바지와 패딩조끼, 바람막이를, 두두도 긴팔과 바람막이를 껴입었다. 안개는 보슬보슬 비가 돼서 내렸다. 속엔 땀으로, 겉은 비로 젖었다. 이제 추위가 시작되었다.

 


우우우웅. 이따금 산 골짜기가 울릴 때마다 우린 도로 가장자리로 비켜섰다. 관광객을 싣거나 안테나 설비를 위한 차들이 볼일을 다 보고 다시 마을로 내려가곤 했다. 이번엔 적십자 트럭이 보였다. 비어 있던 - 우리가 타고 올라갔었어야 했던 - 트렁크엔 낡은 집기들 잔뜩 실려 있었다. '힘내! 거의 다 왔어!' 착한 무차초들 안녕! 지쳤지만 반갑다고 힘차게 인사하고 싶었다. 우리 표정의 변화를 그들은 생생하게 느꼈을 것이다.

두두, '다시 적십자 차 타라고 하던 때로 돌아가면 탈거가?'

나, '음... 그땐 너무 길 초반이었어... 한두 시간 뒤에 만났더라면 당장 오케이 고맙다고 탔을 듯.' 속으로 그때 트렁크에 올라타고 정상에 도착해 고맙다 인사를 하고, 그들 짐 나르는 것도 도와주고, 내려가는 그들 뒤에서 배웅까지 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11km 걸어오셨구요, 정상까지 2.5km 남았습니다'

500미터에 한 번씩 있던 표지판을 만나는 일은 갈수록 더뎌졌다. 3000미터 고지에 가까워지며 산소가 부족했다. 머리는 띵하게 울리고 호흡이 채워지지 않아서 쉬어도 피로했다. 대화도 사라졌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괜찮다 걱정하지 말라고 말 없는 응원을 보내고자 함이었지만 지친 와중에 애써 미소를 보이려고 하는 게 왠지 마음 짠했다.


서로에게 걸음 속도를 맞추지 않았다. 앞선 사람이 뒷사람의 속도를 잠자코 기다려 줄 뿐이었다. 앉아서 쉬고 가자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쉬었다. 그냥 선 채로 폴대에 기대고 허리를 숙여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쉬는 그때 그 순간만 편할 뿐이었다.  내 체력은 바닥이 드러났다. 반면 두두는 무던히 걸어 올라갔고 늘 앞에서 먼저 기다리고 서있었다. 보병 만기 전역 출신은 다르네, 이 병장님! 지친 기색을 좀 가려 보려 괜히 우스갯소리를 했다.





 

마의 2km라고 이름 붙인 마지막 구간. 드디어 정상이 눈 앞에 보였다. 언덕 위에 케이블 타워가 솟아있었다. 드디어 정말, 이번엔 진짜 다 와간다! 눈 앞에 목적지가 보이니 기운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산은 마지막 여정을 쉽게 끝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올라가기만 하던 길이 얄궂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전혀 반갑지가 않았다.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가야 되잖아! 내려갈수록 눈 앞의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오르막이 얼마나 경사질지 아찔했다.

내리막 끝에 바로 이어진 오르막길을 보노라니 코 앞에서 포기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여기 텐트 치고 자고 내일 올라가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나는 이미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남은 거리가 1 킬로미터나 될까 바로 앞에 케이블 타워가 솟은 정상이 보이는데도 몸이 천근만근 도통 움직이질 않다. 열 걸음 걷고 쉬던 것이 다섯 걸음에 한 번, 세 걸음에 한번, 마침내 한 걸음 내딛고 허리를 푹 꺾어 쉬어야 했다. 정상을 앞두고 도저히 길을 이어 걸을 수가 없어서 길가에 퍼질러 앉았다. '조금만 쉬자.' 두두는 내 앞 와서, 다 왔어, 가자. 앉지 마, 퍼지면 안돼 라며 기운을 북돋았다. - 나중에 하는 말은 이때 자기도 너무 힘들어서 그 순간에 퍼질러 앉으면 오늘 안에 정상에 못 갈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


보병 출신은 아무 장기가 없는 줄 알았는데 장기가 다른 게 아니라 정말 잘 걷는 게 특기였나 보다. 다리도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고 정신도 혼미하니 옆에 서서 날 챙기는 남편이 달리 보였다. 화내지 않고, 채근하지 않고, 타이르는 두두를 보니 새삼 의지가 되고 고맙고. 이런 게 부부애인가. 그런 마음속 고백이 쑥스럽게 들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전투 상황도 아니고, 자진해서 정상에 걸어 오르겠다고 이 생고생을 하고 있는 모양이라니!

빅터가 떠올랐다. 빅터야, 이거 안 괜찮은데?! 







(다음 편에 계속)


볼칸 바루 등반 브이로그 https://youtu.be/nL1rjNeE7q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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