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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부캐는 서퍼

엘 빨마르에서의 주말

by 이랑삼




세뇨르 두두의 주말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두의 취미생활이 회사 내에서 공공연하게 알려졌다. 뽀얗던 얼굴색은 거무께해졌고, 콧등은 볕의 집중 공격을 받아서 붉은 채로 껍질이 일어 있었으니, 회사 동료들이 한마디 말없이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은 두두에게 '세뇨르 두두, 지난주에도 해변에 갔어?', '이번 주말에도 서프하러 가?'라고 말을 걸곤 했다. 그럼 아마 내 남편, 두두는 당당하게 그리고 왠지 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물론이지'라며 서퍼들의 손인사를 지어 보였을 것이다.


불 타오르고 싶은 금요일 밤. 우린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일탈을 하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누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토요일은 평일보다 더 이른 아침을 시작해야 했다. 물놀이하려면 배를 든든히 해야 해. 나는 한국인의 밥심 신조를 되새기며 주방으로 갔다. 볶음밥 아니면 라면이라도 끓여냈다. 식사를 마치면 이후에 할 일은 간단했다. 수영복 위에 반바지와 티셔츠를 걸쳐 입으면 끝. 전 날에 챙겨 둔 바다용 가방을 들고 아파트를 나섰다. 교통지옥 시티가 아직 청초한 민낯으로 아침잠에서 못 깨어날 때, 우리는 파나마 운하를 관통하는 라스 아메리카스 다리를 건너서 도시를 얼른 탈출했다. 그렇게 우리는 엘 빨마르에 도착했다.












엘 빨마르El Palmar는 교통체증이 없으면 파나마 시티에서 1시간 40분이면 닿을 수 있는 해안 마을이다. 해안가에 서너 군데 숙박업소, 서핑 아카데미 한 곳을 제외하고는 다 가정집인 작은 동네다. 서핑지로 알려져 있지만 해변은 늘 한산한 편이었다. 다른 휴양지가 주말에 더 떠들썩한 것에 비해 이 마을의 거리는 주말에도 조용하고 평화롭다. 서핑 보드를 든 사람이나 길 끝에 짓고 있는 이층짜리 벽돌집 건설 때문에 온 사람들 정도가 가끔 길을 지나갔다. 우리는 브라질인이 운영하는 파나마 서프 스쿨의 너른 뜰에 앉아서 바다에 나갈 준비를 했다.















부캐로 변신,

탈바꿈의 과정



반바지와 티셔츠를 훌렁훌렁 벗으면 수영복이 짜잔 하고 나온다. 그 위에 래시가드를 하나 더 입으면 완료. 얼굴과 손등, 팔목에 선크림 한 겹을 더 바르고 장비 보관소로 간다. 주로 이용하는 서프보드와 적당히 긴 리쉬 줄을 가지고 온다. 왁스 역시 중요하다. 장비빨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에 손과 발이 닿는 부분에 덕지덕지 왁스를 눌러 바른다. 그리고 서프 강사이자 애정 하는 친구, 호세와 익숙한 길을 따라 해변으로 나갔다. 옆구리엔 서프보드를 낀 채로.



복장이 준비가 되면 마음도 덩달아 서퍼의 그것으로 바뀐다. 나는 맨발로 걷는 그 길이 좋았다. 잡풀이 성성하고 돌부리 박힌 비포장 흙길이었지만 그 위를 터벅터벅 걸으면서 해방감을 느꼈다. 길이 끝나고, 엘 빨마르의 검은 모래사장에 들어설 때, 모래 위에 첫 발자국을 쿡 찍을 때, 부드러운 모래가 발가락 사이사이를 따뜻하게 채우는 그 기분이 좋았다. 자연의 공기 중으로 내어진 몸뚱이는 시위라도 하는 듯이 쭉 기지개를 늘어뜨렸다. 할 수 있다면 백덤블링도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서핑을 할 때만큼은 사회적 시선이 무의미하단 걸 느꼈다. 그 순간만큼은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자유롭게 흐트러졌다. 나대로의 몸매, 얼룩덜룩하게 그으른 피부, 마음대로 헤집어진 머리카락.









사실은 신경 쓸 겨를도 없다. 파도는 다른 생각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의 서핑은 멋지게 '파도를 타는' 시간보다 파도에 처박히거나 파도를 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멀리서 보는 파도는 해안으로 밀려오면서 작게 거품이 되어 부서지는데, 그 흰 파도도 가까이서 보면 내 전체를 집어삼킬 것 같은 위압감을 받는다. 실로 힘이 셌다. 서핑을 하다가 파도 속으로 고꾸라지면 나는 물속에서 머리가 위에서 아래로 데굴데굴 휘감겨 돌았다. 코로 입으로 짠물은 가득. 파도가 지나고 수면 위로 떠오르면 나는 서둘러 밀려난 서핑보드를 붙잡는다. 그리고 앞을 본다. 한 세트의 파도가 계속 밀려온다. 그 앞에서 나는 덜컥 겁이 나곤 했다.


한 번은 두두에게 물었다. "파도가 다가올 때 무섭지 않아?"

두두는 "무섭지, 그런데 나는 서핑을 할 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아."











서핑을 할 때는 지금 살아남는 게 먼저야, 그게 좋아. 서핑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생각이 많았을까.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분노와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의 우리는 사로잡혀 있다. 그 중 몇 퍼센트 정도가 의미 있는 고심일까, 고민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는 걸까? 재밌게도 파도는 아무 의도함이 없지만, 파도의 힘에 몸을 맞긴 사람들은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가장 근본적 욕구가 무엇인지를 재확인한다. 파도 앞에선 자신의 물리적 안전보다 상위에 있는 건 없었다. 나를 위협한다고 느끼게 하는 상황에 놓이면 범속한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파도의 싸대기, 파도의 옆차기를 맞으니 정신을 못 차리겠다.

잡생각 들 공간은 없다. 일단 살고 보자.

목표는 하나. 지금 오는 저 파도만, 저 하나만 잡아보자.

정신을 다 잡고, 온 근육과 신경을 집중시킨다.

균형과 무게 중심이 조금만 틀어져도 난 바다로 처박힐 것이다.













파도의 움직임과 일체가 되어서 나가던 서핑 보드의 위의 아슬아슬한 느낌이 그리운 요즘이다. 자유롭게 엘 빨마르를 왕래하던 그 시기를 떠올리다가 두두에게 물었다. 그때 너에게 엘 빨마르는 무엇이었냐고. 음, 나는 해우소. 변소 말고, 딱 해우소의 느낌이야! 배출에 비유하다니 여윽시 프로 배변러, 그 다운 답변이라 생각했다.

근심을 푸는 공간, 해우소. 그에게 엘 빨마르의 바다는 도시에서 쌓인 스트레스, 감정의 찌꺼기들을 배출하는 장소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서프를 시작하던 시점은 우리가 파나마에 막 정착하고, 거기다 두두는 새로운 회사에 적응을 해야 하는 힘든 시기를 보내던 때였다. 서핑을 하면서 그는 회사로부터 받고 있던 스트레스가 사실 자신을 힘들 게 할 정도로 복잡하지도,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퍼의 옷을 입은 두두가 직장인 두두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또한 서핑이 두두의 회사생활에 미친 의외의 성과도 있었다. 두두의 '서퍼' 이미지는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도 호응이 좋았다. 매번 물먹고 넘어진 이야기가 대부분인 그 이야기에 사람들은 웃고 공감했다. 그는 자신의 달고 쓴 그의 '레벨업'의 과정을 공유하면서 '회사인, 세뇨르 두두'에서 잠시간 멀어질 수 있었다. 직장 동료들은 그를 상사나 회사 사람이 아닌 세컨드 캐릭터, '부캐, 서퍼 두두'로 더 편하게 접근했다. 그리고 공명하 듯 자신들의 속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고 감정적으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두두에게 물었다.

회사 적응할 때 말이야, 서퍼 이미지가 친해지는 데 유용했지?ㅎㅎ

나의 남편, 두두는 대답은 고민할 것도 없이, 응.



나는 두두의 '본캐'가 회사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캐 활동을 즐기는 그를 보면서, 그가 이루길 바라는 본캐의 모습이 무엇인지 상상한다. 이 지겨운 격리가 끝나고 다시 찾은 엘 빨마르에서 '부캐, 서퍼 두두'가 이번엔 어떻게 성장해갈지 궁금해진다. 혹 두두가 '서퍼 두두'가 아닌 '또 다른 부캐'를 선택해 키우더라도 상관없다. 그가 무슨 옷을 입든 나는 '부캐 두두'의 노력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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