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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삼 Aug 25. 2020

완전격리 5개월 나의 성적표

파나마 완전 격리 일상이 남긴 것





완전격리 6개월 차

뉴노멀로 향하는 파나마


이렇게 까지 오랜 기간 격리될 줄은 몰랐다. 파나마의 엄격한 완전 격리 조치가 이제 시행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난주부터 폐쇄되어 있던 산업들을 부분적으로 개방을 시작했고, 남녀 성별과 신분증 번호별 외출 통제 조치도 완화되어 이제 격일로 외출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 같은 경우는 월, 수, 금엔 시간에 제약받지 않고 마트 장을 볼 수 있다! 여전히 일요일의 자유를 누리지도 남편과 산책을 나갈 수도 없지만, 지난 통제 조치에 비하면 프리덤! 자유가 느껴진다.

파나마는 최근 일일 검사 시수가 큰 폭으로 증가했고, 신규 확진자 발생률도 비교적 감소했다. 워낙 검사수나 신규 확진자 수도 일일 편차가 심해서, 산업 개방 이후 변화를 더 길게 지켜봐야겠지만 지난 1주일의 변화를 봤을 때 긍정적이다. 하지만 한국의 코로나 재유행의 과정을 보더라도 언제든 급증의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팬데믹 속 파나마 사회는 이렇게 새로운 일상으로의 복귀를 시도하고 있다.  

 


이 단계에서 나는 지난 5개월 동안의 완전 격리 생활의 기록을 하고 싶다. 우리 인생에 가장 위협적이며 특수한 시기로 회자될 것이다. 전 세계의 공중보건이 위기에 처해 있고, 공권력에 의해 이동의 자유를 빼앗긴 채 칩거하는 생활이다. 두두는 집에서 근무를 하게 됐고, 나에게는 주부로서의 역할이 강조됐다. 주말에 도시 외곽으로 나가고, 분기별로 여행을 가던 일상이 사라지면서 우리 삶의 제1의 원칙 - '많이 다니자' - 이 불가능해졌고, 일상의 스트레스 풀던 장소와 대상이 삶에서 삭제됐다. 우린 장보는 일정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집에서 머물렀다. 집 밖에서 실행되던 학습, 업무, 대외 관계, 외식, 미용, 오락 등의 활동이 집에서 이루어지거나 다른 형태로 대체되어야 했다. 국민학교 시절 한 학기가 끝나는 날 방학식에서 교탁 앞으로 나가 성적표를 받들던 기억을 떠올리며 격리 5개월의 생활기록를 정리해 본다.










격리 전후의 신체변화 


몸무게 :  나 변동 없음 / 두두 2~3kg 빠짐



두두가 처음으로 날 위해 사과를 깎았다

주변의 파나마 친구들은 체중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두두는 오히려 줄었다. 회사 출근할 때 현지 식당의 고칼로리 점심 식사가 집밥으로 대체되고, 저녁 술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격리 중에도 최소 주 2회는 음주를 했는데도 체중이 늘지 않아서 다행이다. 외출과 주말 운동이 불가해 지니 잘 먹는 게 건강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해서 균형 있는 식단을 만들려고 애썼다. 수우미양가에서 '우수'라고는 자평할 수 없지만 전에 없던 새로운 메뉴가 많이 개발되었다. 코로나 위기로 말미암아 건강한 식단과 식습관을 만들기 위해 합심해 노력할 수 있었다.



반면 체력 유지에 중요한 근육량은 소멸 직전임이 분명하다. 인바디 체크가 되는 체중계라면 확실히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집에서라도 운동해야지, 해야지 이 생각만 5개월을 보낸 나란 사람... 반성합니다. 주말에 산에 오르고 바다를 가는 일상이 사라지니 요가, 조깅, 스트레칭 같은 생활체육에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변명의 여지없이 운동 습관이 절실하다!!


근육이 줄어들면서 몸에 갖은 통증이 생겼다. 몸을 받치는 근육은 사라지는데 집에서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경추에 무리가 왔다. 그로 인한 신경통 때문에 우울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날들도 있었다. 평소라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일도 집에 있으니 생각을 환기할 일이 없었다. 스트레스에 취약해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쓰던 베개를 치우고 수건으로 목과 등 허리를 받치고 나니 증상이 바로 호전됐다. 세상에, 베개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이 경험으로 우리는 집의 기본 가구, 베개, 매트리스, 책상과 의자, 컴퓨터와 주변기기(노트북거치대, 손목보호대, 키보드, 마우스), 소파만큼은 몸에게 맞는 걸 갖추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3447미터 화산 바루에서도 꿀잠 자던 두두는 주에 하루 정도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두두뿐 아니라 파나마의 많은 사람들이 수면장애를 겪고, 우울감, 심한 기분변화와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어떤 경우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갇혔다는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패닉을 겪기도 했다. 비관적 생각에 빠져드는 순간은 심한 공황장애가 아니더라도 종종 있다. 누구나 멘탈관리가 필요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 의지와 실망, 희망과 낙담이 대립한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를 끄집어내야 한다. 그리고 고민의 실체와 대면해, 정답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두두와 나는 서로가 거울이 되어 부끄러운 감정을 펼쳐 놓고 대화를 했다. 우리가 생각한 몇 가지 해답은 이런 것이다,



이럴 땐 집이랑 가족이 먼저지.

뭔갈 꼭 해야 돼? 스트레스 받지마, 너 하고 싶은 거, 편한 걸 해.

됐어, 이 정도면 우리 잘 살고 있어.


(쓰고 보니 다 두두가 한 말 같은 건, 프로 고민러는 나였단 건가.)





언어영역


브런치 작가에 도전



두두는 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브런치가 궁금했나 보다. 조용히 혼자 키보드를 만지더니 나중에 나에게 와 브런치 작가 신청했어 라고 내게 말했다. 기존에 하던 블로그에 정체기를 맞고 있던지라 나도 두두를 따라 작가 신청을 해봤다. 열린 블로그의 형태도 아니고, 초대장을 받아 계정을 여는 방식도 아닌 '작가'라는 이름을 얻어야 하는 몇 단계의 과정이 있었다. 오우 신박한데? 며칠 후 나는 브런치 작가로 선정이 됐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런데 두두는 나와 다른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며칠간 그는 진심과 농담이 반반 섞인 시기 질투를 부렸다. 너만 됐냐? 김 작가, 좋겠따?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면서 지난 여행에서 있었던 의미 있는 경험과 생각을 꼼꼼히 떠올렸다. 격리로 갇힌 신세라 더욱 떠오르는 모든 여행의 감각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모자란 글솜씨지만 생각을 하나로 엮고, 한 공간에 고이 전시하니 마음이 무척이나 뿌듯했다. 글을 읽어주시는 다른 분들의 흔적들을 보면 완전 단절되어 있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니터 건너의 사람들에 감사했다.

두두는 내가 글을 올릴 때마다 글쓴이보다 더 열정적으로 내 글에 - 특히 조회수와 라이킷 수 - 에 집착했다. 하루는 나 몰래 내 폰으로 브런치 앱에 들어가서 조회수 검색하는 사실을 들킨 이후 핸드폰 접근금지 명령을 내려졌다.









수리영역




머신 러닝? 러닝 머신?, 장모와 사위의 대화

지난 오 개월 동안 수리적 활동을 했다고 보고할 만한 건 일일 확진자 통계 낸 것 밖에 없다. 격리일상 성적표에 어떻게든 끼워 맞춰 볼까 고민했지만 그냥 수포자로 남기로. 대신 이과형 인간 두두의 성과를 기록해 본다.

두두는 미라클 모닝(*평소보다 이른 아침 시간을 활용해 하루의 첫 시간을 긍정적으로 이끄는 생활 습관)을 활용해 관심 가지던 머신러닝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몇 강을 들으면 다시 회사로 복귀할 줄 알고 시작했는데 격리는 예상을 외로 길어졌고, 두두의 가방끈(?)도 길어져 그 사이 온라인 강좌 이수증도 몇 가지 취득했다. 짬짬이 공부의 성과를 톡톡히 본 두두. 강좌가 끝나는 날 저녁에는 와인을 마시며 그의 성과를 축하했다.

우리가 축하할 일이 어딨겠어 이런 일이라도 축하하고 지내야지! 격리 일상에 나쁜 일만 없어도 다행인데, 사소하지만 축하할 거리가 생기면 그것을 핑계로 술 한 잔 하기로 한다. 식사를 하며 두두는 자기가 배우고 있는 신문명을 내게 신나게 설명을 했다. '이게 말이야 쉽게 말하면 @$$%&(* 이런 논리로 작동하는 거야, 예를 들면 &*^%이렇게 사용할 수 있는 건데~'

하지만 그의 설명에 집중할수록 내 동공은 점점 풀어지는.. 건?  







외국어 영역


EBS 입트영, 귀트영 청취 5개월


 



<입이 트이는 영어>와 <귀가 트이는 영어>는 한국시간으로 아침 6시 20분부터 월~토요일 20분씩 진행하는 EBS 라디오 방송이다. 재택근무를 시작한 두두와 3월부터 들었더니 벌써 6개월이 지났다. 매일 40분 주 4회 꾸준히 들었는데, 영어실력은 늘었을까? 

YES!라고 외칠 정도의 자신감은 없지만, 확실히 모국어에서 영어로 전환되는 턱이 조금 낮춰진 것 같다. 회사에서 영어로 소통하는 두두는 매일 40분 청취로 인한 변화를 체감한다. 주말을 보낸 월요일 아침 회사 직원들과 전화 통화를 해도 말문이 막히는 일은 줄었다고 하니 이만하면 성과가 있다. 또한 매일 새로운 주제를 수록해 트렌디하고 색다른 이슈에 대해 접할 수 있고, 생활에 밀접한 단어부터 수준 높은 단어까지 다양한 배우는 기회가 된다.


절제 없이 풀어지기 쉬운 일상에서 매일 고정된 시간에 일정한 활동을 한다는 것은 건강한 생활패턴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라디오가 끝나면 현지시각 오후 5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우리는 하루의 공식 일정이 무사히, 그리고 건설적으로 끝난 것을 기념해 자리에서 일어나 포옹을 하곤 했다. 라디오 청취를 하면서 영어 능력을 향상한 것 이상으로 배움의 자세와 습관을 꾸준하게 만들 수 있어서 우리 일상에서 더 의미 있게 남았다.  





사회영역


격리를 핑계 삼아 온라인 커피 타임



격리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야는 대인관계였다.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우리 파나마에서 일군 관계들은 소원해지거나 더 강조됐다. 모든 관계는 각자의 형태와 거리가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칠레에서 만난 친구에게 팬데믹을 이유로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다. 친구 알레는 커피 한 잔 하자고 제안했다. 주말 커피 한 잔을 타고서 우린 와츠앱 영상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화장을 하고 큰 귀걸이를 걸었다. 그녀의 가족들, 고향, 수도 산티아고의 안부부터 요즘의 일과 남자 친구, 지난 추억까지 함께 되짚었다. 가끔 인터넷 신호가 끊어지거나, 말이 겹치는 일이 있긴 해도 문자를 주고받는 것보다 수월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이 온라인 만남이 징검다리가 되어서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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