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랑삼 May 20. 2020

여행의 감각은 왜 잊혀지는 걸까

집콕 격리 8주차, 여행 사진 폴더를 열어본다




'네, 여기는 파나마입니다. 이곳의 상황은 ...'



카카오톡 채팅창에 모인 친구들과 수다의 시작은 '파나마 특파원 모드'로 시작하곤 한다. 파나마에 거주한지 2년 반, 내가 파나마에 살게 될 줄 생각이나 했겠어라는 이야기는 수시로 했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 완전 격리되어 지내야 된단 건 상상도 못했다. 생각과 상상의 여집합이었던 이 '파나마에서의 격리 생활'이 8주차에 접어들었다.

COVID-19로 인해 국가 차원의 통제 정책이 시행되고 날이 갈 수록 강화되어 내 스페인어 기억공간에는 새로운 단어들이 저장되었다. Toque de queda(통행금지), Salvoconducto(통행허가증)이란 단어들로 시작해서 며칠 후 Cuarentena absoluta(완전격리), Ley Seca(금주령)이 등장했다. 스페인어 배우는 학생으로선 '빈출도 낮음'에 속했던 단어들이 이제 일상이 되었다. 이 전례없는 상황에 스페인어 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색적인 조치들도 새롭게 만들어졌다. 




 

판매 금지 띠가 둘러진 와인 코너(금주령은 5월 8일부로 해제되었다)와 남성 외출의 날에 남자들만 보이는 마트 입장 대기줄




파나마는 중남미 국가들 중에서도 코로나에 대응하며 강력한 통제 조치를 시행하는 나라다. 파나마의 거주자들은 남녀 격일 외출제와 신분증의 마지막 번호에 따른 개인별 외출 시간 지정제라는 촘촘한 틀 속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외출이 허락되는 경우도 일반적으로 식료품이나 의료품 구매에 한정된다. 나와 남편의 2인 가정의 경우엔 열흘에 한 차례 2시간 동안 마트에 가서 장보는 게 외출의 전부가 되었다. 그렇게 우린 2달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동안 파나마는 건기가 끝나고 다시 우기에 접어들었다. 피에스타와 플라야(해변)의 화려한 계절이 지나고 습기와 천둥, 번개, 비바람의 계절이 온 것이다. '우리 격리 라이프가 더 우울하고, 더 아늑해지겠군.' 완전격리로 살아가기엔 우기가 어울릴까, 건기가 어울릴까? 의미없는 질문을 던져 보기도 했다.




대양이 몰고 온 습기로 집안 공기가 쿰쿰해지자 3년 전 여행이 떠올랐다. 외장하드를 연결하고 폴더에 폴더로  들어가서 2016년 12월의 자취를 찾았다. 모니터 가득 사진을 채우고 한 장씩 넘겨 보았다. 사진으로만 봐도 느껴지는 건조하고 시린 공기, 하지만 볕은 보기보다 더 따갑게 내리쬐었다. 나는 파타고니아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에서 호수를 건너려고 페리를 기다렸던 작은 나루터 위에 서 있었다.



 


페오에 호술를 지나며 보이는 전경, 파이네 그란데와 꾸에르노스 델 파이네


뿔 혹은 첨탑 모양이 상징적인 꾸에로노스 델 파이네




그 여행은 산자락을 걷는 3박 4일 일정이었다. 우린 중간에 변수가 생겨 우린 타고 들어왔던 페리를 타고 다시 나가려고 아침 일찍 나루터에 있었던 것이다. 유빙이 다리를 쳐서 트레킹 루트가 끊어졌다니. 원시 자연에 와서 자연적 이벤트를 불만할 수는 없지만, 동선이 꼬인 것은 물론 이틀치 걸을 거리를 하루만에 완주해야 하는 일정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섰다. 첫 배를 놓치지 않으려고 일찍 나와서 백팩을 내려 단촐한 선착장의 풍경을 즐겼다. 페오에 호수의 옥빛이 신비로워 물 속을 들여다 봤다. 상쾌한 공기도 양껏 느꼈다. 시선은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종국엔 파이네 그란데와 꾸에르노스 델 파이네로 향했다. 독특한 형세를 꼼꼼히 훑어봤다. 가슴 벅차게 아름다운 풍경에 꼬인 일정에 대한 부담따윈 마음 속 구석탱이로 몰려났다.


사진을 볼 수록 크고 작은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의 감각을 더 생생하게 살려내질 못하는 것이 아쉬워졌다. '그 때 그 공기 참 상쾌했었는데, 눈이 시릴 정도로 세상이 파랬었는데, 파랗다 못해 투명한 느낌이었지. 근데 이게 다가 아니잖아?'

놓치고 있는 게 있을 것이다. 페오에 호수의 색깔, 꾸에르노스 델 파이네의 분리된 암벽의 색깔, 어떠한 물질도도 가리고 있을 것 같지 않은 새파란 하늘. 더 닮은 표현 대상을 찾아보려고 머리도 굴려 본다. 금속 표면에 살 닿을 때의 극명한 서늘함, 유리같은 투명함으로 눈이 시린 360도 파노라마. 마냥 상쾌하지만은 않았다. 입술이 금세 말라서 립밤을 발랐지. 최대한 집중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그 때를 떠올려 봤지만 아쉬움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 대자연 위에가 얼마 안되는 부피의 나란 존재가 열어지고 확장되는 듯한 느낌을 되살려 보고 싶었다. 




만약 그 날의 감각을 제대로 돌려내면 파나마에 있는 지금 내가 조금은 덜 답답할까. 모니터에서 시선을 거두고 현실을 둘러보니 여긴 너무 후텁하고 갑갑했다. 전염병의 끝은 보이지 않으니 어떤 여행 계획도 세울 수 없고 고 맥이 빠졌다. 지난 여행에 심취해서 그곳에서 사귄 언니와 사진을 공유했다. 그랬더니 언니 왈, '요즘 같을 땐 정말 갔었나 싶으네'

여행이 뭐죠? 하물며 자유란 뭔가요? 격리를 시작하며 나는 이 전무후무한 생활을 한번의 실험적인 경험으로 치기로 했었다. 실험 아닌 실험적 생활 도중에 나는 사진첩을 열고 여행을 꿈꿨다. 그리고 아쉬워했다. 왜 여행의 감각은 잊혀지는 걸까. 이렇게 잊혀질 거면 여행이 우리에게 남기는 건 뭘까. 그래서 내가 궁극적으로 되찾고 싶어한 여행의 감각은 어떤 것들일까. 똑 떨어지는 정답을 내릴 수 없었다.  





꾸에르노스델파이네 자락 어딘가, 가까이서 보는 건 더 힘들고 더 아름답다




한편 확실한 답을 찾은 질문도 있었다. 사진을 보며 여행을 환기하다가 그곳에서 품었던 궁금증이 다시 되살아났다. '꾸에르노스델파이네의 절벽면은 밝은 회색과 어두운 색으로 선명하게 분리되어 있을까?' 삼년 반 동안 그대로 푹 묵어 있던 내 여행의 질문. 그 답이라도 이 참에 찾아보자. 이것 저것 키워드를 쳐서 구글링을 했다. 지질학 용어와 현상을 억지로 이해하느라 애를 썼다. 생소해 도저히 머리만으로는 쉽게 파악이 안되서 공책를 꺼내 필기를 하고서야 얼추 해답을 찾았다. 유레카. 신난 마음으로 여행 동반자, 남편에게 가서 그림을 그리며 브리핑을 했다. 남편이 '역시 노력하지 않으면 얻는 건 없네.'라며 내 노력에 응해줬다. 당분간은 이렇게 지난 여행이 남긴 흔적들을 주으며 아쉬움을 달래 봐야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완전 격리는 여행이 나에게 남기고 가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되돌아 보기 마침맞은 시기가 될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