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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삼 Jun 22. 2020

파나마 부부의 로맨틱한 격리 생활

로맨틱이거나, No-man틱한 완전격리 13주차




오전6시. 미라클 모닝을 맞이하는 부부.

여자는 부엌으로 가 빵과 계란을 굽고 사과와 샐러드 채소를 큰 접시에 담는다. 

먼저 샤워를 하고 나온 남자는 레몬진저 티백 찻물을 덥히곤 식탁에 매트와 수저를 놓고 아침식사를 나른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인사하고선 '잠은 잘 잤어?' 

지난 밤 수면이 어땠냐는 질문으로 서로의 컨디션을 확인하며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간다.

새벽에 화장실 가러 깼다느니, 어제 너가 코를 골더라느니, 창 밖에 새들이 많이 움직이네, 어제 꿈이 재밌었다느니, 말해보라느니, 기억에 남지 않을 사소한 이야기들을 밥상 위에 나눈다.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치우고서는 제각자의 자리로 옮겨 앉는다. 

아침잠을 쫓고 얻어낸 토막의 시간 덕분에 남자는 최근 시작한 머신러닝 공부에 맑은 정신으로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본가에 안부 전화를 하던 시간에 여자도 이 좋은 분위기에 편승해 아침 공부를 하게 됐다.


남자는 재택근무를 한다. 일을 하다가 가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펴고 여자가 있는 곳으로 와 이마에 뽀뽀를 시도한다. 여자는 이런 남자가 자기가 하던 일에 방해를 한다며 순순히 얼굴을 내주지 않으면서 본격적으로 유치한 몸싸움에 돌입한다. '너 기분 로맨틱할 때만 나한테 와서 날 방해하지!' 

툭탁툭탁.




우기의 아침엔 무지개를 만나는 날이 많다!








우리 부부의 '로맨틱한' 요즘 일상이다. 

낯 간지러운 표현은 영 체질에 안 맞지만, 굳이 안좋다 끌어내릴 필요가 있을까. 평화롭고 사랑스런 하루 하루가 이어진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환상을 가질 재택근무를 하면서, 짬짬이 가족에게 다가가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고, 출근 준비가 없는 덕에 자기개발의 여력이 있는 '일, 가족, 자신'의 세박자 균형있는 삶. 하지만 이 모든 평화는 집 안에서만 그렇다.  



일주일에 한번 외출이 예정된 날인 예민해진다. 일단 마스크, 손소독제를 장착한다. 몸에 어떤 것도 닿지 않게 조심을 하고, 위험 반경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도록 레이더를 세우고 있어야 한다. 외출이라곤 생필품 식자재 와인 사러 나가는 게 전부고 여흥을 위한 외출은 상상할 수도 없다. 우린 문 밖은 위험한 세상을 살고 있다. 

짐작하듯 모든 국가, 모든 사회가 골머리 속앓이 중인 코로나 팬데믹의 세계의 여러 일상 중 한 모습이다. 파나마는 아직 완전격리 중이다. 



최근 파나마의 코로나 상황은 하루에 신규 확진자가 700명 아래 위로 발생한다. 하루 검사횟수의 30%는 양성으로 판정이 된다. 3개월 전, 파나마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파나마 땅의 모든 이는 강력한 격리를 지키도록 강제되었다. 그리고 두 달 후, 단계적으로 산업을 재개장하고 격리 조치도 대폭 완화했다. 수십일 집안에만 머물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 바깥 출입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렸다. 그리고 2주가 지나자 신규 확진자 수는 격리 해제 직전 대비해 2배로 뛰었다. 모두가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상승폭이 현실이 되자 더욱 놀랐다. 파나마 정부는 섯부른 격리 완화였다는 욕은 욕대로 먹고 성과 없이, 서둘러 수도와 수도권 지역을 다시 완전 격리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격리로 길게 둬버린 머리가 맘에 든다




그렇게 우린 지금 13주째, 3달이 넘는 기간동안 집안에 스스로 가둔 생활을 하고 있다.

로맨틱하다. 부대낄 사람이라곤 서로 뿐인 생활을 세 달째 하다 보니 요즘 내 세상은 아주 노맨틱No-man-tic하다. 외출하더라도 만나는 사람은 마트 계산원 정도 밖에 없다. 길가다 마주치는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인사 나누는 살가움이 있었는데 이제는 엘레베이터에 사람이 있으면 혼자 타시라 보내버리고 다음 번을 기다리는 게 미덕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건물 1층의 경비 아저씨가 생수 배달 왔다고 인터폰 오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세상에 코로나 따위 모르는 천진한 사람처럼 '올라, 부에나Hola, buena!' 활기차게 인사 한다.




보고 싶은 한국 본가의 멍멍이




소통의 아쉬움을 우린 스마트폰의 매신져 앱으로 해소한다. 불과 십년 안에 정착한 이 찬란한 기술에, 문명에 절이라도 하겠다. 요즘같은 격리 생활에선 바깥 공기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매일 같이 연락해서 안부를 묻고 코로나 전과 다름없이 수다를 떨 수 있다. 전세계인의 공공의 적이 생긴 김에 먼 나라에 사는 친구에게도 이참에 영상통화를 걸어서 얼굴을 보고 모니터를 앞에 둔 커피 타임을 보낼 수 있다. 격리로 못 만나는파나마의 지인과 와인 한 병씩 두고 영상통화를 하면서 취기를 함께 또는 따로 나눌 수 있었다. 백일이 되는 시간 동안 사람과 관계는 없지만 지극히 외롭다고 느끼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되는 것 같다.



농담 삼아 내 요즘 삶이 노맨틱하다고 써봤지만, 이 생활을 버티는 가장 큰 이유는 나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상황, 파나마, 완전격리, 3개월째, 나 혼자, 이 아파트에서 버텨야 한다면. 매일 변화 없이 마주한 빈 벽을 보며 어지러움증을 느껴졌을 것이다.  



고작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으로 우리가 된다. 우리는 말 한마디 없이도 서로의 기분을 알아채 안전한 정도로 기분과 컨디션을 조정해 준다. '정신 차려, 초콜렛 하나 먹으면 힘이 날거야.' 언제 해결될지 기약이 없어 보이는 지금의 난관 앞에 맥주 한 잔 마시며 고충을 토로한다. 마구 구겨진 종이 같은 감정이 탈탈 털어져 나온다. 답 없어 보이는 문제를 둘만의 해결식으로 의외로 단순하게 분해해버린다. 그 방법이 최선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적어도 함께 결정했고, 오늘만큼은 뭉친 감정과 스트레스를 분리수거해버렸다. 우리 감정의 분리수거장엔 희망 하나 정돈 껴있다.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를 작은 가능성이지만, 그것을 목표로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어 본다. 그렇게 오늘의 무게를 이겨내고 내일 아침에도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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