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로 팔로우하는 NGO에서 해안정비 봉사자를 모집하는 글이 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환경 단체의 대외 일정. 지구의 날을 기념해 기획된 행사였다. 팬데믹이 시작되고부터는 사람이 모일 만한 대외 행사는 종적을 감췄다. 사람들의 손 삯과 관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환경 보호의 현장에서도 말이다. 도시가 마비된 지난 1년 동안 강과 바다는 쓰레기가 아무 대책 없이 쌓였다.
코로나로 도시가, 세계 경제가 멈추었다지만 바다에 누적된 쓰레기는 팬데믹 전보다 더 많아졌다. 일회용기 사용을 막는 정부의 정책과 사람들의 변화가 멈췄다. 아니, 도리어 과거로 회귀했다. 바이러스 감염의 우려로 식당과 카페엔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수저, 폼 도시락 사용을 선호하게 됐다. 길가엔 버려진 마스크, 폼 형태의 도시락이 나뒹군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이목은 이 바이러스의 전파와 통제에 집중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만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환경 이슈는 코로나 사태가 남긴 또 다른 부작용인 것이다.
파나마만 해양 쓰레기의 사이클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
코스타델에스테라는 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된 집은 강하구에 접해 있는 한 아파트였다. 큰 유리창으로 넓은 바다 풍경을 품은 '오션 뷰'는 그 집의 자랑이었다. 시시때때로 썰물의 바다는 수 킬로를 저 멀리, 바깥으로 밀려나가며 대지의 갈비뼈가 드러났고 강줄기도 덩달아 얇아지며 맨바닥을 보였다. 만수가 되면 작은 다리 아래는 바닷물과 강물이 맞부딪혀 철벅철벅 한바탕 난리가 났다. 예보를 보지 않아도 밀물과 썰물 때를 맞출 수 있는 게 그 집이 주는 보너스였다.
집이 입던 옷처럼 익숙해지고, 강물이 보이는 창은 블라인드로 가려졌다. 동쪽 해가 들어와 아침부터 집 안을 덥히는 게 문제였다. 겸사 일상으로 들이고 싶지 않은 강하구의 현실도 가릴 수 있었다.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탁 트인 풍경 속의 구석구석을 관찰하게 됐다. 가까이 볼 수록 현실은 마음이 아팠다. 지금 우리가 사는 땅의 강과 바다는 멀게 보아야 아름다울 뿐이다.
여기 와서 이거 좀 봐봐. 창가에 붙어 우기의 강물이 만수의 바다를 만나는 모습을 보고 섰다. 충격에 멍하다. 바다로 이어지는 강의 등줄기로 쓰레기 줄지어 흘러갔다. 상류에 설치된 'el BoB' (Barrera o Basura '장벽 또는 쓰레기'라는 폐기물이 바다로 향가는 것을 막는 그물 띠)에 걸려있던 폐기물들이 불어난 강물에 보호장벽을 넘어 바다로 쏟아지는 것이다. 세찬 물살을 타고 바다의 더 깊은 곳으로 행진했다.
고래들이 생각났다. 저 바다엔 혹등고래 떼가 온다. 새끼를 키우러 수천 킬로를 이동해 찾는다. 속도를 즐기는 돌고래들도 산다. 고래를 만나고, 아이처럼 기쁨을 터트리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가 이 자연을 즐길 자격이 있을까? 옳게 사랑을 하고 있는 걸까.
우기의 폭우가 쏟아지면 마음으로 바란다.
바다가 저 멀리 밀려나가 있길,
그래서 쓰레기들이 모조리 도시의 주변에 쌓이길,
차라리 손이 닿는 곳으로, 우리가 주으러 갈 수 있도록.
바라기만 하는 마음은 가슴이 너무 아프다.
Plastic is new soil?
줍는 게 능사가 아니다
코스타델에스테에서 맞은 첫 건기. 매일 우중중한 하늘은 파랗게 개고, 해안선이 또렷하게 보였다. 주말마다 해변엔 천막이 세워졌다. 환경 단체와 기업에서 해변 정비 사업을 위해 봉사단을 모았다. 두 시간 만에 대형 수거 차량 두 대가 뻘이 범벅이 된 폐기물을 실어갔다. 온갖 쓰레기를 줍고 모기에 물리고, 신발 손 얼굴은 흙 범벅이 되지만 분위기는 축제 같았다. 사람들의 표정엔 더러움이 없었다. 한 시간이 넘는 정비활동이 끝나면 후원기업에서 나온 바나나, 과자, 음료수를 서서 먹었다. 정리된 해안에선 밴드가 '제로 플라스틱'이라는 곡을 연주했다.
건기가 끝나갈 무렵, 마침내 쓰레기 층을 한 겹 벗겨낸 진짜 해변이 드러났다. - 물론 사람들이 가지 못하는 먼 곳은 여전히 쓰레기가 가득이었다.- 정화된 해변을 보며 미력한 노력으로 나마 환경에 일조했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했다. 파나마만의 뻘을 보면서 하나 된 사람들의 염원 그리고 천혜의 자연이 되살아나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다시 우기가 되자, 해변엔 새로운 쓰레기로 메워졌다. 건기 동안 강가에 쌓인 폐기물이 비 내려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바다로 향하는 환장의 사이클이었다. 아픈 마음에 나는 바다를 외면했다. 블라인드로 가리고, 전처럼 강물을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비가 오면 조수를 살폈다. 땅에서 멀어져 있는 바다를 보며 차라리 다행이라 자위하고, 드는 걱정을 없앴다. 곧 쏟아 내릴 쓰레기를 보지 않아도 우중충한 날씨와 저기압 탓에 기분은 축 처진다. 나 자신이 작아진다, 무력하다. 두두, 인류엔 희망이 없나 봐.
파나마의 쓰레기 문제, 몇 사람이 달려 나가 열 번 스무 번을 줍는다고 달라질 문제가 아니다.
쓰레기 더미 위 부촌,
코스타델에스테
바다로 향하는 코스타델에스테의 마티아스 강
코스타델에스테는 파나마에서 보기 힘든 계획도시이다. 생활편의 시설이 밀집한 도심에선 벗어나 있지만 널찍하게 구획된 차도와 인도가 있어서 걷기 좋고, 소음이 적은 동네다. 전의 글에서 언급한 40층이 넘는 초고층의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고, 대부분의 건물들은 '럭셔리', '익스클루시브', 고급스러움을 표방한다. 주민 전부를 상류층이라는 분류에 욱여넣을 수는 없지만, 파나마의 빈부격차나 도시 전반적인 인프라를 비교해보았을 때 잘 사는 동네임은 확실하다.
바다를 향한 나열한 고층 빌딩 대열 앞으로는 해안공원이 마련되어 있다. 주민들은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를 아주 좋아한다. 선선한 아침과 저녁이면 조깅하는 남녀들, 몸을 단련시키는 무리, 아이와 반려견과 산책하는 가족들로 이 길이 붐빈다. 산책로변에 있는 천연림과 맹그로브 숲이 원래의 파나마만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숲과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은 잘 없다. 해안의 숲과 땅이 흙이 아닌 쓰레기 층으로 덮여 있지만, 그 옆을 지나며 너무도 '고급스럽게' 잘. 산다.
재작년 한국에서 찍은 우리집 포장 쓰레기. 덜 유해한 소비를 하고 싶은 요즘 소비자. 기업은 그 마음 아는지
한국과 파나마는 환경오염의 경로와 정도가 다르다. 해운대에서, 대천해수욕장에서 코스타델에스테 같이 수 천 톤의 쓰레기 더미를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는 재활용을 잘하고, 쓰레기통에 제대로 버리는 것으로 개인의 역할이 끝난 건 아니다. 환경보호의 표어도 현실화되어야 한다. 제조산업이 많은 한국은 어마 무시한 '잠재적' 쓰레기를 생산하고 있고, 이 폐기물 처리 문제는 한국 사회를 넘어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다.
창문 밖 쓰레기 해변을 보며 묻는다. 오늘 우리가 버린 쓰레기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미래의 아이들도 해변의 흙을 밟고, 조개를 줍고, 파도 속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