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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농 Jul 30. 2024

하다 하다 벼까지

<모모모모모> 그림책과 벼 심기

2022년 한 해동안 우리 6학년 5개 반은 함께 텃밭을 가꾸었다. 한 반에 두 두둑씩 맡아, 함께 심고, 함께 물을 주고, 함께 수확했다. 학년 회의를 할 때면, 텃밭 얘기가 빠지는 법이 없었다.  ‘이번 주는 밭을 갈아야 해요.’ 학년 부장 강쌤이 얘기하시면, 반별로 텃밭에 나가, 아이들은 모종삽을 들고 열심히 땅을 팠다. ‘더 늦기 전에 밭에 모종을 심어야겠어요.’ 하면,  선생님들은 하훼단지에 나가 모종들을 한가득 사 왔고, 다음 날 아이들은. 각 반 두둑에 올려진 모종을 삼삼오오 모여 심었다.  한 아이가 흙을 퍼내면, 또 한 아이가 모종을 심고, 나머지 한 아이는 물을 뿌렸다. 매일 물 주기 위해, 급식을 먹어치운 우리 반은 무조건 텃밭행. 축구하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들도 운동장에 가려면, 텃밭에 먼저 들러 물 주기 미션을 끝마쳐야만 했다. 남자아이들은 빗물 저금통에서 물 한가득 퍼와 거칠게 뿌려놓곤, “이젠 가서 축구해도 되죠?” 묻곤 했다.


 선생들은 열정이 넘쳤고, 아이들은 순수했다. 근처 모든 학교에서 학교 폭력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그 해, 우리 학교 6학년에서는 단 한 건의 학교 폭력 사안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구별 교장단 회의에 다녀와 어깨가 으쓱해진 교장 선생님이  6학년 선생님들을 세워놓고, 생태 교육 덕분인 것 같다고, 우리를 추켜 세우셨을

때, 학년 부장, 강쌤이 대답했다.

“우리 아이들이 싸울 시간이 어딨 어요, 교장 선생님? 텃밭에 물 주느라 매일매일이 얼마나 바쁜데요!”  


4월에 심은 모종들이 무성무성 자라고 있던  5월 어느 날, 벼재배 키트 다섯 상자가 각 반으로 배달되었고, 나와 아이들은 이제 벼까지 심어야 했다.


이젠 하다 하다 벼까지 심어요, 선생님?

우리 반 아이가  놀란 듯  물었다.  


2년이 지난 올해,  나는 새로운 학교 1학년 담임이 되었고, 우리 학교에서 홀로 우리 반 아이들과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  (글 쓰는 지금은 든든한 동료샘 텃밭지기들이 생겼지만) 5월 어느 날, 벼 재배 상자를 인터넷에서 직접 구입했다.


요술단지 꺼내듯 벼 재배 상자를 높이 들어 보이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게 뭘까?”

예상대로 아무도 모른다.

 “벼를 심을 거야. 벼를! 그림책 먼저 읽어줄게. <모모모모모>.”

아이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신나 했다. 예상대로 반응이 폭발적이다.


6학년 아이들과 1학년 아이들이 어쩜 이렇게 다를까? 요일별로 물주는 순번을 정해도, 6학년 아이들은 더 안 하겠다고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1학년 아이들은 더 하겠다고 가위바위보를 한다. 자기 차례는 조금밖에 안된다며 속상해한다. 친구가 물을 줄 때, 졸졸 따라다니며 구경한다. 텃밭의 작은 변화도 금방 알아차리고, 기뻐한다. 텃밭 농사가 어떤 이들에게는 노동이 되고, 또 어떤 이에게는 놀이가 된다.  


2년 만에 다시 읽는 <모모모모모>.

“출판사가 <ㅎ>이야. 코가 밤처럼 생겼나 봐. 작가 필명이 <밤코>래. “

작가가 위트 있게 그려놓은 재미있는 그림 조각들이 장면 곳곳에 속속 숨어있다. 6학년 아이들과 읽을 때는 보이지 않던 그림 조각들. 두 번째 읽노라니, 훤하게 보인다. 읽고 나서, 제일 재미있었던 장면을 서로 나누었다. 그리고 모둠별로 나누어 준 볍씨를 나누어주었다. 자세히 관찰하고, 볍씨도 한번 그려보라 했다.



이제는 볍씨를 심을 차례. 이제부터 1학년 아이들에게 생태 수업은 놀이 시간이 된다. 모래놀이하듯, 벼 상토를 <안 화분>에 담고, 볍씨를 심는다. 그리고 <바깥 화분>에 물조리개로 물을 채우면 된다. <안 화분> 상토가 다 젖고 <바깥 화분>이 로 다 채워질 때까지. 아이들은 이 모든 과정을 차곡차곡해나갔다. 그리고 물 주는 차례가 될 때까지 숨 죽여 기다렸다.

그러다, 소란이 일어났다. 물만 보면, 꾸러기 심보가 발동하는 도움반 하윤이 모둠이다. 아이들이 책상과 교실 바닥에 물을 뿌려대고, 손으로 만지며 말 그대로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한 차례 혼내고, 교실 뒤로 나가 서있게 했다. 어질러진 교실 바닥을 청소하고 겨우 수업을 마쳤다.

벼 화분을 교실 창가에 두었다. 벼싹이 나고 손 한 뼘 정도 자랐을 때, 교실 건물 바로 바깥에 두었다. 처음부터 바깥에 두면, 새 모이가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두 뼘 정도 자랐을 땐, 전교생 모두가 볼 수 있게 학교 텃밭 입구에 두었다.



올해도 하다 하다 벼까지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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