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지난달, <프랑스 현대사진전>을 다녀온 뒤 예술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졌어요.
특히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는 저는 예술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한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는데요.
마침 그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책을 추천받아 읽고 든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주로 참고한 책은 '미학적 인간으로 살아가기'(최광진/현암사), '미학수업'(문광훈, 흐름출판)이며, 외에도 여러 소스를 참고했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예술: 미(美)를 창조·표현하려고 하는 인간 활동 및 그 작품
- Oxford Languages
사전적 정의로는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 미와 예술을 비교해 볼게요.
먼저 '미(美)'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수사학'에서, 미를 "그 자체로 가치 있으면서 존재 자체로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좀 아리송하죠?
칸트는 미의 구체적인 요소를 제시하고 있어요.
미는 (질적으로) 무관심적 쾌감이다.
바로 무관심성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관심'이란 사회적 맥락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를테면 길 위에 난 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말하죠. 이때 생기는 감각은 이해관계나 사회적 맥락과 상관없는 순수한 것이기 때문에 '무관심'하다라고 하는 것이에요.
반면, 관심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는 경우는 플로리스트가 꽃을 바라보며 어떻게 장식할지 고민하는 것을 들 수 있어요. 혹은 산을 보면서 경제적 가치를 매겨보는 부동산업자가 될 수도 있고요.
미는 이러한 관심(사회적 맥락)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대상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예술'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미가 무관심적 쾌감이라면, 예술은 현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예술의 특징은 창작자의 의식이 담겨있는지가 중요한데요. 이때 '의식'이란, 대상에 대한 관심을 말합니다.
이 관심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어요.
첫 번째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부조리함에 대한 저항이고
두 번째는 이상적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에요.
이러한 문제의식이 없다면, 아름다운 무엇이 될 수는 있지만 예술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죠.
따라서 예술은 예술작품은 부조리함에 대한 저항, 혹은 이상적 상태에 대한 지향이라는 의식을 담는 행위라고 할 수 있고, 이 의식이 담긴 대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자체로 (보기에)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죠.
(최광진의 미학방송 참조)
그렇다면, 예술은 우리 사회에 왜 존재하며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시대적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 예술이기 때문이에요.
한 시기의 사회는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시대정신은 계속해서 변화하죠. 예를 들면 교회 중심의 중세시대에서 인본주의의 르네상스 시대로 옮겨간 것처럼 말이에요.
책 '미학적 인간으로 살아가기'에서는 이런 시대적 변화가 일어나는 순서를 제시하고 있어요.
철학과 예술에서 먼저 시대적 변화가 시작되어 경제, 정치, 교육 분야로 번져나간다고요.
시대적 변화는 철학과 예술 - 경제 - 정치 - 교육 분야 순서로 번져나간다.
이런 흐름이 생기는 이유는 분야별로 대중의 동의가 필요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경제보다 정치가, 정치보다 교육이 더 많은 대중들의 공감과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는 분야죠.
철학과 예술이 변화를 주도하는 이유는 실용성을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미래를 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의 공감과 객관성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분야인 거죠.
따라서 예술은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우며, 시대적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측면에서 사회적 의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기존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부조리함에 대한 저항과 이상적 상태에 대한 지향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예술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이유를 알아봤으니, 나에게 필요한 이유를 알아볼까요?
예술작품은 관습을 탈피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앞서 이야기 한 '의식'이 담겨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예술은 우리의 관습적인 생각을 중지시키고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웁니다. 대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하니까요.
이런 감각의 각성은 여행지에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낯선 환경에 놓임으로써 관습적인 사고가 멈추고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하죠.
우리가 여행을 하면 활기 가 생기는 것은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 감각이 깨어나기 때문입니다. 익숙한 장소를 계속 보다 보면 대상을 관습적으로 보게 되어 의식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낯선 장소에 가보면 우리의 판단을 중지하게 만들고 호기심을 작동시켜 감각이 깨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대상과의 교류가 일어나면서 의식의 충전이 이루어집니다.
- 미학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이처럼 예술은 우리의 감각을 깨우고 관습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생각과 의식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예술이 아름다운 것은 예술 자체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경험에서 오는 감각의 쇄신 때문이다.
- 미학수업
사람은 큰 위기를 겪고 나면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예술적 체험을 통해서 사고가 확장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비로 '숭고 체험'을 했을 때입니다.
칸트는 숭고를 무한성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숭고는 거대한 크기에서 유발되는 수학적 숭고와(이과수 폭포를 보며 몇 리터인지 가늠을 할 수 없는 경우) 무시무시한 힘에서 느껴지는 역학적 숭고로(번개의 압도적인 위력) 분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숭고 체험을 하면 불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이 불쾌감의 원인은 우리의 '오성'*으로 개념화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쾌감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이성'을 활용해 사유하면서 한계를 극복하고, 이 과정에서 사고를 확장시킵니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능력을 자연을 분류하고 법칙을 찾아내는 판단능력인 '오성', 초감성적인 우주나 영혼, 신을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인 '이성', 대상을 감각하고 지각하는 능력인 '감성'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래서 칸트는 "숭고는 오로지 불쾌감을 통해서 도달한 쾌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성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예술의 불쾌한 경험, 즉 숭고 체험이 사고의 확장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술은 기존 관습을 타파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체성을 찾는 데 도움을 줍니다.
미학적 인간은 남이 만든 규범과 가치를 수동적으로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미적 본성에 따른 반성적 판단력으로 자기의 길을 찾아갑니다.
남이 가는 길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자기 집이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 집에 가려면 어느 시점부터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 합니다.
- 미학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이 책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통용되는 관습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나 다움은 없어지고, 따라서 주체성 역시 사라지게 됩니다.
예술을 추구하고, 내 안의 창의성을 발현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은 나 다움을 찾고 삶의 주체성을 되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자발적 구성, 바로 여기에 미학 수업의 목표가 있다.
- 미학수업
이번 글에서는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은 우리 사회에 왜 필요한지, 그리고 나에게 왜 필요한지를 알아봤습니다.
'미학적 인간으로 살아가기'와 '미학수업'의 내용 중 제 마음에 가장 와닿은 부분을 정리하고 제 생각을 더 한 내용이라 생략한 부분이 많습니다. 내용이 잘 못 전달 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요.
혹시 예술과 미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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