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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봉 Nov 14. 2020

울지 못한 아이

상처 받은 내면 아이

에고의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참 그동안 아이한테 소리치고 다그치고 내 마음에 조급함이 올라올 때마다 엄청난 분노로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누군가 나를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나는 바로 싸움닭 모드로 변할 기세였다. 그랬던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푸름이연구소 성장 강연에 참석했다. 여기서 만큼은 내가 우는 것이 마음껏 허용이 된다. 나는 내가 싫다를 외쳤다. 온몸에서 냄새나는 것 같고 그런 내가 싫어 머리카락을 다 쥐어뜯어 대머리가 될 것 같다고 소리쳤다. 강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정신이 없었다. 멍한 상태로 집에 오다 보니 30분이면 돌아올 집을 거의 한 시간 반쯤을 돌고 돌아 집에 도착했다.      


어릴 적 나는 아빠나 할머니께 혼이 날 때 울면 더 맞았고 그렇게 울음을 삼켜야 했다. 엄마 앞에서 징징거리면 엄마는 우는소리 한다며 듣기 싫다고 했다. 나의 징징거림과 삼킨 울음은 그대로 상처가 되어버렸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었다. 배 속에 아기를 열 달을 품으며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서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기도로 가진 예쁜 아기 은총이. 그렇게 진통을 하고 예쁜 아기를 품에 안았다. 아기를 보며 처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반가워, 은총아. 우리 잘 지내보자"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본격 육아에 돌입했다. 모든 것이 서툴었던 나를 위해 어머님께서 아이 목욕을 시키고, 젖이 잘 돌라고 미역국과 반찬들을 해주시고 아기가 울 때는 왜 우는지 어디가 불편한지 나에게 묻고는 하셨다. 어머님께서 묻는 그 말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왜 우는지 어디가 불편한지를 알면 바로 해결될 일이 나는 그 모든 게 서툰 엄마였기 때문에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아기가 울면 바로 안아주지 말고 울려라."

"버릇돼서 계속 안아달라고 칭얼거린다"

"젖이 안 나오는 거 아니냐 젖 말고 그냥 우유를 먹여라"

"아기가 뱃골이 작다"등

 내 육아에 참견하는 그들이 싫었다. 나도 그렇게 하라고 배웠기에 알고 있었다. 내가 겪으며 알아가도 될 일들을 먼저 경험해 보았다고 훈수를 두고 있다. 그냥 내가 아기 엄마니까 참견 그만하면 안 될까? 그냥 나 혼자 알아서 할게. 참견하지 마... 사람 마음이 이리도 간사할 수가 있을까? 도와주었을 때는 한없이 고마우면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싶으면 그렇게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 우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백일이면 백일의 기적이 찾아온다는데 나에게는 그런 기적도 찾아오지 않았다. 잠을 자지 않고  밤낮으로 나를 괴롭히던 은총이가 참 별나다 생각했다. 아기 우는 소리를 듣고 5층에 계신 어머님이 당장 달려오실 것 같은 조급함이 마음이 들었고, 무언가 잘못하다 걸린 사람처럼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백일 아기였을 즈음 밤낮없이 우는 나를 아빠는 갖다 버리라고 했단다.  아빠는 당시에 밤낮없이 울어대는 아기가 시끄러워 말을 했다고 할지언정 아기는 버려지는 순간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 놓이게 된다. 어쩌면 그때 당시 내 생명의 위협을 느껴 더 크게 울어댔는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와의 연결이 끊어지면 나는 다시 울음으로 연결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고스란히 상처가 되어 내 무의식에 저장되었나 보다.      


100일 된 은총이를 품에 안고 바라보았다. 하늘에 있는 천사가 기쁨을 전하려고 내 품에 안긴 듯 잠을 자는 아기 모습은 정말 예쁘다. 사랑스럽다. 이때에는 언제 진통을 했었는지 진통에 대한 기억도 없다. 내가 낳은 내 아기가 맞나 의심스럽다. 그렇게 예쁜 아기가 내 품에 안겨 잠든 모습은 한없이 예뻤다. 그러나 우는 순간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입을 틀어막아버리고 싶다. 아기 우는 소리를 듣고 당장이라도 5층 시댁에서 어머님이 내려오셔서 왜 우느냐며 나를 닦달할 것 같았다. 이제는 안다.      


이 모든 것이 상처 받은 어린아이가 상처 받은 그 지점에서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말이다. 상대를 보고 화가 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상대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 받은 내면 아이의 상처가 건드려져 내 마음이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알았으니 그 투사를 내려놓는 연습을 할 것이다. 아이들이 하는 일에 분노가 올라온다면 내 상처가 건드려지지 않았는지 먼저 생각할 시간을 가질 것이다. 에고의 마음에 휘둘려 투사하는 그 마음을 거둬들이고 진정한 내가 되어 내 삶의 마지막에는 평온하게 한 생을 잘살아냈다 기쁘게 육체를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육은 에고이다. 에고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비로소 평화로울 수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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