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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웉 Sep 09. 2024

힘 빼고 사는 삶

간단한 자기소개

 누군가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대답할 적당한 답을 준비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나는 달리기와 배드민턴, 음악감상 정도를 준비했다. 적당히 갓생의 뉘앙스도 갖고 아예 싫어하는 일은 아니니까 거짓말한다는 죄책감도 들지 않는다. 사실 나조차도 내 취미가 뭘지 고민을 좀 했는데, 자유가 제한되었을때 가장 간절히 하고 싶은 게 뭐였는지 돌아본 결과, 나는 마작과 야구 시청을 좋아한다. 이 두 개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남들에게 취미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마작은 도박이라는 인식이 있을 뿐더러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다가 덕후같다. 야구 시청은 하루에 3시간씩 티비 앞에서 죽치고 앉아있는 사람으로 보일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두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운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운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만 버텨낼 수 있다. 이건 내 인생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입대 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너무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내 또래 남자들이 헬스로 다져진 보기 좋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1년 반 동안 내가 달려서 얻어낸 결과를 그들은 처음 뛰어보는데도 거뜬히 달성했다. 억울해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아직 남들과 비교하는 고질병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그쪽이 조금 더 억울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계는 내 것이라고 착각하고 내 뜻대로 삶을 풀어나가려고 했다. 신 따위는 모른척하고 어디까지나 걸어갈 수 있다고 착각했다. 물론 왜 걸어야 하는지는 생각해본 적 없이 남들이 걸어가니까 따라 걸었다. 어떤 일이 딱히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걷다보니 어딘가 괴로워져서 내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힘을 빼고 살기로 했다. 그들이 뛰는 것과 상관 없이 나는 건강을 위해, 내 쾌락을 위해 뛰면 되는 것이다.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도 내가 만족할만큼 하면 되는 것이다.

 호수를 연상했다. 적당한 높이의 나무들이 듬성듬성 있는 숲의 가운데에 있는 제법 큰 호수였다. 나는 가라앉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다. 아래는 까마득한 어둠, 본능에 새겨진 공포와 함께 허우적거렸다. 다행히 주위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발에 쥐가 나고, 더 이상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정신을 잃고 기포를 내뱉은지 얼마 뒤, 이윽고 발에 부드러운 진흙의 감촉이 느껴졌다. 머리 위로 흐르는 물결이 머리카락을 흔들었고, 물풀이 발목을 간지럽혔다. 호수의 밑바닥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정말 예뻤다. 일렁거리는 쪽빛과 흰색빛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보며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숨이 막히지 않는 게 엄마 뱃속은 이런 기분일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도 호수 바닥이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지만 방법이 없었다. 발목을 잡아끌었다가는 물귀신이라고 불리고, 그렇다고 사람들을 설득했다가는 세이렌이라고 불릴 것이 뻔했다. 그저 누군가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인생에 대한 내 생각은 이런 식이다. 파도가 오면 파도를 뚫지 말고 그저 넘는 것이다. 플랑크톤처럼 둥실둥실 떠다니다가 폭풍우가 와서 어느 뭍으로 떠밀린대도 거기에도 언제나 삶이 있다. 과녁을 그려놓고 화살을 맞추는 것에는 물론 재미도 의미도 있지만, 화살을 쏴놓고 거기다가 과녁을 그리는 것은 성공률 100%이다. 하루하루 열심히,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살고자 하니까 파랑새같던 행복이 내 곁으로 찾아온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외로울 줄 알았던 호수의 밑바닥에서 마침내 내 곁으로 가라앉아준 사람들을 만난다. 아직 남들과 비교하고, 내 취미도 꾸며내는 불완전한 사람이지만 나의 이데아는 이렇다. 인간을 초월해 내가 바라는 이러한 삶을 수행할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도 나름 열심히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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