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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웉 Sep 16. 2024

잠수종과 나비

9월 15일의 기록

 무언가를 가진다는 것은 그것이 없는 상태(지금 당장이 아닐지라도)도 함께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것이 없는 상태가 있기에 더욱 그것이 소중해진다. 핸드폰이 생기면서 생활이 편리해졌지만 이제 핸드폰이 주머니에 들어있지 않을때 괜히 불안해져서 핸드폰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다. 엉금엉금 걸어다니다가 이내 걸어다니고, 자전거 타는 방법을 배우고, 대치동 학원가까지 혼자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이런 학창시절을 거치며 내 생활반경은 점점 넓어졌다. 그런 자유는 너무나 당연해서 인식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곳 군대에 와보니 그 어느 때보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사람이 의자만큼 많은 카페라면 평소에는 숨막혀서 가고 싶지도 않았을텐데 오늘 사진을 보니 거기에 앉아서 커피와 빵을 실컷 먹고 싶었다.

 자유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사실 아직도 자유로운 편이다. 몸은 여기 안에서 지내야 하지만 내 정신은 어디로 날아가도 아무도 제한할 수 없다. 심지어 시간대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2019년의 가을 밤하늘 별과 달 아래의 첨성대와 동궁과월지, 올해 7월 얇은 옷으로 풀내음을 맡았던 아사쿠사까지. 정신이 거기에 더 잘 머무를 수 있게 해줄 사진들과 구글지도타임라인까지 나는 볼 수 있다. 반대로 원래도 제한되어있던 것도 많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한 상상은 어렵다. 외계인을 떠올리더라도 어느 정도 사람을 본딴 모습이 되기 마련이다. 사람의 상상력에도 중력이 작용한다. 신체적인 한계도 있다. 오늘 저녁에 3km를 14분 안에 겨우 뛰고 기뻐했는데, 이를 단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5년 정도 날개가 돋아나 날 수 있었다가 5년 후에는 다시 날개가 상실된다면 얼마나 답답할지 생각해봤다. 그 밖에도 사상범이 되기 싫은 나는 반사회적인 생각을 의도적으로 자기검열한다. 이렇게 제한이 많은데 부대 밖으로 못 나가는 것은 말하자면 겨울에 옷을 몇 겹 껴입고 그 위에 옷 하나를 더 걸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남은 문제가 몇 개 있다. 나를 가질 때 내가 없는 상태도 함께 가지게 되는데, 그게 현재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한 번에 한 명만 만난다.'라는 원칙이 보편적인 연애관계에서는 기회비용까지 함께 전가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연애를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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