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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웉 Sep 10. 2024

앤텔로프 캐니언

9월 8일의 기록

 저녁 쯤에 생활관의 친구 하나가 노래를 틀었다. 스물 한 살 친구인데도 나와 플레이리스트가  거의 비슷해서 충격적으로 좋았다. 리쌍의 노래들, 거북이의 <비행기>, MC몽으 <죽을만큼 아파서> 등을 들으며 옆의 99년생 의사들과 따라불렀다. 그 전에는 한화생명과 젠지의 롤 결승전을 보고 있었다. 5세트 접전 끝에 마침내 한화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을 때 많은 팬들이 눈물을 흘렸다. 한화생명이 마지막으로 우승한 후의 8년동안 선수들 밥 해주는 여사님을 제외하고 팀 이름도, 코치도, 선수도 모조리 바뀌었다. 나도 8년이라는 단어에 내가 왜 그렇게 울컥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8년 전 고등학교 2학년 때의 내 모습을 그리워한 것일까.

 겪어보지 않은 세계를 추억할 수도 있다. 2004년생 친구가 자기가 태어날 쯤의 노래를 트는 것도, 1Q84나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1980년대 도쿄의 모습을 내가 그리며 웃음짓는 것도 그렇다. 웃기긴 하지만 핸드폰이 없던 시대의 낭만을 군대에서 조금이나마 체험해봤다. 그러고보면 "그때가 나았지"라는 말은 아무 의미 없는 당연한 사실이다. 시간은 흐르며 근원적인 노스텔지어를 남긴다. 죽음이 슬픈 이유는 두 번 다시 그 사람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여기서 죽음을 마주하므로 쓸쓸하지만, 기억 속에 형언할 수 없는 형상으로 남는다. 최근에 본 '나 혼자 산다'에서는 이장우가 본인이 군생활했던 부대 앞을 방문하는 내용이 방영되었다. 지금 내가 보내는 시간도 머지않아 부드럽고 아름다운 곡선으로 풍화될 것이다. 오늘은 깎이지 않은 직선 그대로의 오늘을 오롯이 느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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