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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웉 Sep 09. 2024

커피와 글쓰기

9월 6일의 기록

 커피를 마시는 건 내 하루에서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언젠가, 아마 본과 2학년이 끝나고 실습을 돌기 직전인가?  부터는 하루에 커피 한 잔씩을 매일 마셨다. 커피의 향도 좋아하지만 정신이 마법처럼 맑아지는 기분이 좋다. 연필깎이에 넣고 연필을 사각사각 깎아 날카롭게 만들 듯 내 정신을 깎아 뾰족하게 만든다. 그렇게 완성된 정신은 쉽게 닳고 쉽게 부러진다. 보통은 이럴 때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한다. 칼이 훑고 지나간 여러개의 면이 서로 만난 마음의 꼭짓점이 종이 위에 닿는다. 그리고 이내 흔적을 남기며 갈려나가 무뎌진다. 이런 일상을 반복하다보니 커피는 나와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어제는 커피를 아이스아메리카노로 하나 시켜놓고 빨대로 쪽쪽 빨아먹는 사치를 부렸지만(PX에서 사서 마시는 커피는 카페에서 사는 것의 삼분의 일 값이다) 딱히 글을 쓰지도,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날카로워진 정신의 끝이 자꾸만 나를 콕콕 찔러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내가 단골로 하는 상상을 했다. 지금 정신상태 그대로 어렸을 때로 돌아가는 망상이었다. 오늘의 타깃은 중학교 1학년 3월이었다. 이제까지 내 인생의 정확히 절반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추억들과 마주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아쉬운 선택들도 많았다. 별 것도 아닌걸로 싸우고 멀어진 단짝친구, 노는 여자애들만을 쫓다가 놓쳐버린 나를 좋아하던 여자애 등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51살의 9월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정확히 두 배를 살게 된다. 그 때도 지금의 하나하나를 기억해내는 만큼 후회하겠거니 생각하니까 웃음이 나왔다. 인생은 후회의 연속인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커피의 맛을 알게 된 것처럼 씁쓸한 그 맛을 매일 즐기며 살아갈 때가 올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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