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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웉 Sep 11. 2024

완전군장

9월 3일의 기록

 화요일이기 때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동생과 아빠가 점심에 맥주를 마시러 갔다는 등 시덥지 않은 얘기를 하다가 항암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기존에 했던 임상항암에도 불구하고 CT상 병변이 커져 다른 항암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한 3~4달 전부터 종양표지자라는 수치가 계속 오르고 있었기에 각오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고 해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무거운 슬픔을 오롯이 받아낼 수는 없었다.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눈사태처럼 나를 파묻고 저 아래로 끌고 내려갔다. 너무하다는 생각뿐이겠다. 완전군장보다 무거운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이 길을 걸어가야 했다. 적어도 그녀의 삶이 끝날때 까지는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한 줌의 재가 되어도 그녀를 닮은 잿빛 먹구름이 줄곧 내 머리 위에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의지한 적이 있던가. 항상 나의 힘듦은 주위 사람들에게 최대한 숨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늘 엄마는 나에게 삶의 무게를 나눠주려고했다. '주치의 교수님의 말보다 네 말을 더 믿고싶어.', '나 괜찮은 거 맞겠지?그렇다고 해줘.' 따위의 말들을 어깨에 올리다 보니 견딜 수 없을만큼 무거웠다. 오늘은 정말로 억울해서 그녀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엄마도 그걸 알았는지 꽤나 긴 카카오톡을 보내왔지만 분이 덜 풀린 나는 답장 대신 하트만 눌러 보낼 수 있었다. 신을 믿지 않는 나로서는 내가 신이 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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