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웉 Sep 12. 2024

카니자 삼각형

9월 11일의 기록

 1에서 4교시 내내 방탄모를 쓰고 수업을 들었더니 정수리 부위가 아파왔다. 이내 통증은 머리의 경사를 타고 내려가 6교시 수업이 끝날 쯤에는 머리가 전체적으로 지끈거렸다. 이 통증은 감기의 전조증상이라기보다는 한숨 자고 일어나면 나을 통증이라고 느꼈다. 생활관으로 복귀한 후에는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면 다른 세상으로 이동한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잠깐 조는 경우와 잠듦과 깸의 경계를 오가는 경우를 설명하지 못해서 그 이론은 폐기했지만, 지금도 잠은 터널과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동해안으로 자동차를 타고 여행 갈 때 터널을 하나 지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곤 했다. 태백산맥을 지나면 저 멀리 바다와 푸른 하늘이 보였고, 남양주는 구름이 산을 아직 넘어가지 못한건지 어쩐지 항상 비가 왔다. 하나의 태양 아래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의 차이가 생겼다. 오늘도 나른한 오후의 수면으로 시작했지만 일어나보니 창밖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인생은 이처럼 불연속적이구나. 당장 내일 어머니를 잃어도 이상하지 않고 북한이 쳐들어온다면 나는 전방으로 갈 것이다. 내가 믿는 내일은 내가 만들어낸 생각 속의 내일이다. 내일 뿐만 아니고 내 주위의 모든 것이 그렇다. 너도 매일 연락하는 것이 아니니까 거기에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사실은 오랫동안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을 수도 있고, 피서를 갔다가 상어에게 잡아먹혔을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가설 속의 너는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잔디를 한 뼘은 자라나게할 생기있는 웃음으로 그 자리에 있다. 내 가설 속의 우리 집은 내가 두 달 전 아침에 나왔던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세상은 불연속하지만 나는 연속성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간다. 내 머리를 누르는 것이 방탄모인지, 저기압인지, 아니면 수많은 가설들과 상념인지, 알 수 없는 오후를 보냈다.

작가의 이전글 완전군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