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웉 Sep 15. 2024

9132일

9월 9일의 기록

 최저한의 훈련소 생활을 벗어나 조금 넓어진 방에서 생일을 맞았다. 몽쉘 12개을 쌓아 케잌을 만들고 커피도 사서 다같이 먹었다. 생활관의 친구들이 모두 같이 축하해서 즐거웠다. 생일은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해서 거리를 걸어봤지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아서 왠지 쓸쓸했던 때가 예전에는 종종 있었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지 방어기제인지 생일을 딱히 챙기지 않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고 정확히 9132번째 해가 떴다. 지구가 조금 더 느리거나 빠르게 돌았다면 아무 의미도 없는 하루다. 어쩌면 모든 하루가 의미가 있는 것일수도 있지만. 오늘도 그저 다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은 날이었다.

 PX에서 총 7310원을 소비했고 그 돈으로 간단하게 행복을 샀다. 행복을 산다면 그 가격은 얼마 안 된다. 현재의 상태를 미분하면 행복이 나온다. 최저한의 생활에서 조금 넓어진 방으로 옮겼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행복을 판다면 그 가치는 시간당 10000원이 조금 안된다. 식비와 월세가 빠져나가면 더더욱 얼마 안된다. 행복은 사고 팔기에 곤란하다는 생각을 했다.

 핸드폰을 받아보니 브런치작가가 되어있었다. 한 번에 써내려가 두서 없는 글들인데, 어떤 점이 맘에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앞으로 길이 열렸으므로 걸어가기로 했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도 너의 영향이다. 네 블로그를 읽고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혼자만의 글이 안으로 말려서 내성발톱처럼 잘못될까봐 이렇게 사람들 앞에 공개하게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 가득해서 어디까지 올려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선을 잘 지키는 것이 좋은 작가겠지. 내 알몸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걸 즐기는 노출증같아서 한편으론 웃기다. 써왔던 글 2개를 발간하고 일기 3개를 옮겨적었다. 모두 '이만하면 됐어'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해도 작가가 된다면 네가 가진 브런치 작가라는 지위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마음에 들 때, 파괴하고 싶은 욕구도 반물질처럼 생성된다. 내 그림자가 길어져서 너에게 드리운다. 나는 밤을 기다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카니자 삼각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