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라는 무기
한창 철없던 20대의 시절과 안정을 찾아가던 30대 시절을 거치며 어느 순간 나이를 잊고 사는 일이 많아졌다. 20대에도 나는 늘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고, 30대도 마찬가지이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그 체감은 20대의 그것과는 너무 다르다.
예전에 어린 나를 보며 어른들은 '꽃다운 나이다, 한창이네~' 등등을 말씀할 때는 잘 몰랐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보니 내가 그 위치가 되어 바라보는 20대, 30대 어린 친구들이 참 부러울 때가 많다. '나이'가 무기가 될 수 있는 시절이기 때문에 더 그런 거 같기도 하다. 80을 넘어가는 부모님들이 보기에는 나는 여전히 젊은이로 보이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나이'가 주는 불안감이 있다. 무엇을 시작하기에 두려운 나이, 과연 내가 그만큼의 에너지를 쏟아낼 수 있을까 하는 무서움. 이 복합적인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게 된다.
이력서를 쓰다 보면 나이가 경쟁력이라는 말이 무엇인지에 대해 현실적으로 더 다가온다. 아직 내가 생각하는 나이는 한창인데, 사회가 규정한 나이 속에서의 나는 많은 한계들이 그어진다. 그 한계들을 돌파하는 게 또 인생이지 않겠냐 싶다.
하원버스에서 내린 아이가 나를 보며 웃음을 머금은 채, "오늘은 아빠가 학원에 데리러 오기로 했어~" 라며 신이 나서 말을 한다. 나는 속으로 '그 시간에 도착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어제 타지 못한 두 발 자전거를 아빠와 함께 탈 생각으로 기대감에 잔뜩 부푼 아이에게 실망하는 말을 해 주고 싶지 않았다. 학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 아이를 만나면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가고 있는데 저 멀리 아이가 보인다. 아이 혼자 나오는 걸 보고 뭐지 싶었는데, 바로 뒤에 반려인이 따라 나온다. 와... 우! 부랴부랴 퇴근을 했을 남편을 보니 이게 부모의 사랑이구나 싶었다.
{동생, 찬와이}
커러, 너는 혈기 왕성한 나이라 다른 사람의 말투나 억양이 너랑 조금만 달라도 견디기 힘들 거야. 사실 그건 내용이나 표제와 무관해. 너의 청춘은 어디서든 무적이고, 네 임무는 다른 사람이 틀렸음을 최선을 다해 증명하는 거니까. 때로는 주성치가 어떤 영화에서 특정 대사를 했는지를 두고도 상대가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인생 전부를 바쳐야 할 것 같겠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옳은 일을 계속하기만 하면 되지, 다른 사람의 잘못에 책임질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을 거야. 증명하기 위해 네 인생을 낭비할 필요는 더더욱 없고. 그래, 그건 시간이 한참 지나 네 청춘이 시들 때겠지. 그게 인생의 여정이고 상식인데 왜 다들 잊어버렸는지 모르겠어. 젊은이란 전력을 다해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