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 트렌드를 선도하는 대한민국
트렌드를 주도하는 멋쟁이는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특유의 근성과 날렵함으로 세계의 관심을 끄는 대한민국은 새로운 국제사회 트렌드를 주도하게 되었다. 근사함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이 퇴행적인 트렌드의 이름은 바로 보호무역이다. 정부는 5.16(목) 인천공항 세관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된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를 통해 「해외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였다. 이는 최근 해외직구가 급증함에 따라 위해제품 반입 등 현재 제기되고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소비자 안전 확보, 소비자 피해 예방 및 구제 강화, 기업 경쟁력 제고, 면세 및 통관 시스템 개편 등을 골자로 하는 방안이다. 법률 개정 전까지는 관세법에 근거한 위해제품 반입 차단을 실시할 예정이다. 관세청과 소관부처 준비를 거쳐 6월 중 시행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보도자료 첨부파일 참조).
*(관세법 제237조) 국민보건 등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위해제품 차단 가능
보도자료의 참고1에 명시 해외직구 차단 대상 품목은 다음과 같다.
대단히 엄격하고 급진적인 본 법안은 처음 발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중에는 해당 법안의 문제점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나 역시도 같은 입장으로, 정부는 해당 법안을 시행하는 것을 진지하게 재고해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본 법안을 반대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들고 싶다. 첫째, 소비자의 후생과 선택권을 대가로 치를 만큼 가치가 있는 법안인지 의심스럽다. 둘쨰, KC 인증을 통해 진정으로 소비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셋째, 본 법안의 시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국가 간 무역 분쟁의 피해와 대처 방안을 염두해 두고 있는지 우려된다.
첫째 이유는 경제학적인 관점에서의 문제이다. 경제학에서 합리적인 소비자는 주어진 예산 제약 내에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같은 가격이면 더 큰 효용, 즉 만족감을 주는 상품을 구매할 것이다. 혹은 같은 효용을 주는 상품이라면 더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살 것이다. 소비자들이 해외에서 상품을 직접 구매하는 이유는 대부분 후자이다.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해외에 물건을 주문함으로서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같은 상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본 법안이 시행된다면 저렴한 가격의 상품으로부터 얻는 소비자 후생을 포기하게 되는 것으로, 이는 사회적 후생의 손실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상품시장에 원하는 재화가 없어 해외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을 직접 구매하는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본 법안이 시행될 경우 소비자는 후생이 감소할 뿐만 아니라, 상품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셈이다. 이러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만한 법적 근거 혹은 정당성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 소비자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러한 일괄 규제보다는 안전성 검사를 강화하는 것이 더욱 나은 선택일 것이다.
또한, 이 법안은 국내 상품시장의 기업 간 경쟁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KC 인증을 받지 않은 상품의 직접 구매를 제한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특정 품목에 대한 조건부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는 것과 같다. KC 인증을 받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이는 상품 시장을 크게 축소시켜 국내 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 경쟁할 해외 기업이 국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므로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가격을 크게 올려 더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한 통화정책 당국의 오랜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중대한 위협 요소이다.
둘째, KC 인증이 실질적으로 상품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원인이 된 가습기 살균제에도,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어 문제가 되었던 장난감에도 KC 마크가 붙어 있었다. KC 인증을 받은 이후에는 제조사가 자발적으로 해당 기준을 지키도록 되어 있어 해당 제품의 안전성을 확실하게 담보할 수 없다. KC 인증에 관한 여러 소비자들의 인터뷰를 살펴보았을 때, KC 인증이 소비자들에게 충분한 신뢰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셋째, 해외직구 규제는 국가 간 무역 분쟁을 촉발할 수 있다. 본 법안은 타 국가에게 실질적인 수입 금지 조치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상대 국가 역시 한국 상품의 직접 구매를 규제하거나 그보다 심한 무역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보조금과 관세 조치 등 보호무역주의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 국제 상황에서, 이러한 법안은 양 국가에 치명적인 손해를 입힐 수 있는 무역 전쟁의 불씨를 당길 수 있다. 대한민국은 수출 중심 국가로서, 무역 분쟁이 발생할 경우 잃을 것이 너무나도 많다.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해외 상품들의 적발 사례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며, 특정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것만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 '해외직구 규제 법안'이 진정으로 소비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지, 치루어야 할 대가가 너무 큰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법안은 누구를 위한 법안인가? 이 법안은 실제로 시행 가능하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정부는 이 기초적인 질문들을 다시 한 번 숙고하며 법안 시행을 진지하게 재고해보아야 한다. 이런 경멸스러운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만큼 대한민국에 있어 부끄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국민 안전을 해치는 해외직구 제품 원천 차단". 정부24. 2024년 5월 16일.
https://www.gov.kr/portal/gvrnPolicy/view/H2405000001083929?policyType=G00301&Mcode=11218
"[이슈투데이]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도 통과, 'KC마크' 믿을 수 있나". MBC뉴스. 2016년 5월 19일.
https://imnews.imbc.com/replay/2016/nwtoday/article/3974407_31361.html
정다원 기자. "KC 인증마크 받은 장난감도 ‘환경호르몬’ 검출". KBS뉴스. 2013년 10월 18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274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