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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혁 May 12. 2024

인류의 위기


    전쟁과 혼돈의 먹구름이 전 세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작금의 현실은 인류의 보편 가치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다. 2022년 2월 24일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덧 800일이 지났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사망자는 이미 3만 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이 본격적인 라파 지상전에 돌입한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에서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더욱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지속되는 인플레이션과 이에 맞서기 위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고금리 정책의 장기화는 사람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식 이후 세계를 지탱해 온 자유주의와 세계화 정신은 이미 종언을 고한 것일까? 많은 국가에 상호 이익을 가져다주었던 자유 무역은 보조금과 관세로 점철된 보호 무역에 이미 자리를 내준 듯 보인다. 세계를 미약하게나마 하나로 묶어주었던 국제기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력하다. 정치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극단주의자들에게 열렬한 구애를 보내고 있다. 세계의 전망은 암울하기에 그지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국제 자유주의 질서의 종말을 목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음울한 전망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한민국은 점점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떨어지는 출산율, 계속되는 갈등, 경직된 사고방식은 한국의 경쟁력을 우려스러울 정도로 약화시키고 있다.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필수적인 교육, 노동 그리고 연금 개혁은 지지부진하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로 한국은 이때까지 누려온 자유 무역의 이득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국가인가? 우리 미래의 아들들과 딸들이 살고 싶어 할 국가인가? 나로서는 어떤 질문에도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좌절하기엔 너무나도 젊다. 배움을 사랑하고 새로움을 열린 마음으로 맞이하는 자유로운 인간은 그 목숨이 다할 때까지 늙지 않는다. 진실로 젊음을 정의하는 것은 육체의 노쇠함이 아니라 정신의 자유로움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삶에서 다양한 일을 경험한다. 희로애락을 안겨준 인생의 발자취는 하나의 습관이 되고, 습관은 하나의 개인 속 진리가 된다. 새로운 것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익숙한 것이 되어버려 사람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안락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새로운 생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며, 미지의 세계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그러한 자세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다면 한국은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진취적인 자세와 그러한 정신을 긍정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공감대이다.


    혹자는 오늘날 인류를 위기로 몰아넣은 역경과 고난은 인간의 비합리성과 감성으로 인해 발생하였으며, 이에 맞서 이성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류를 괴롭혀온 전쟁, 폭력 그리고 증오는 인간의 파괴적인 충동으로부터 기인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강렬한 충동에 맞서는 이성의 힘은 미약하기에 그지없는데, 이성이란 맹렬하게 폭주하는 감성이라는 이름의 말에 애달프게 매달린 일개 기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성으로 감성을 억누르기 위해선 고도의 훈련과 의식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는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파괴적인 충동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다른 종류의 충동뿐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자유와 평등과 같은 보편 가치에 대한 사랑, 연인, 가족, 나아가 전 인류에 대한 사랑, 창조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지혜에 대한 사랑만이 인류를 구할 수 있다. 사람은 언제나 변할 수 있고, 사람들의 집합체인 국가도 마찬가지다. 아직 희망을 잃기에는 너무나도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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