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서평
역사학은 인간에 관한 학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역사학이 진정 인간에 관한 학문인가? 다시 말해, 오늘의 역사학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제대로 이야기하고 있는가? 본인은 이 서평을 통해 인간에 관한 학문이라는 역사학의 본질을 토대로 역사학 방법론의 발전 과정과 그 의의를 비판적으로 탐구하고 역사학 방법론이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해 성찰하고자 한다.
역사학의 탄생은 언제였을까? 인간이 기록을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작지만 분명한 역사학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장대"한 역사를 찾아보고 싶다면 헤로도토스의 "역사"나 리비우스의 "로마사"가 있다. 하지만 본 글에서는 역사학의 방법론의 발전 과정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방법론적 발전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19세기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좋아보인다.
19세기에 랑케에 의해 역사학은 본격적으로 학문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엄정한 사료의 비판 및 원 사료에 대한 엄밀한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 랑케는 연구의 일차적인 대상으로 국가를 택했다. 이후로 강력한 파급 효과를 지니고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가 각 국가 단위에서 본 정치와 외교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정치사가 역사학 연구 방법론으로 새롭게 부상하였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하는 무수한 영웅들의 위업,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 나폴레옹의 마지막 백일천하와 같은 역사 이야기에서 정치사 방법론을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정치사에서는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바로 정치로, 정치권력의 소유자와 그 역학 관계, 정치제도의 변천, 국제관계와 전쟁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위로부터의 역사'이다. 민중이 정치의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은 인류의 역사에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정치사는 정치지형과 권력을 뒤흔든 세기의 영웅들과 막강한 권력을 누린 지배 계층을 중심으로 서술될 수 밖에 없다. 어떤 역사가도 국가의 평범한 일개 시민이 1815년에 빈 회의에 참가해 빈 체제를 세우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즉, 정치사에 평범한 시민이 들어갈 공간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소수만을 위한 역사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되어 등장한 것이 사회사이다. 사회사는 '밑으로부터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930년대 마르크 블로크 (Marc Bloch)와 뤼시앙 페브르 (Lucien Febvre)가 출범시킨 아날학파와 1960년대 초 떠오른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다. 두 학파는 모두 정치사와 다르게 노동자, 하인, 여성, 소수 인종집단 등 역사에서 소외되어온 계층의 사회적 성격을 규명하고 평범한 대중들의 일상생활에 눈길을 돌렸다.
1929년 등장한 아날학파는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 학파이다. 아날학파는 정치사보다 더 넓은 시각을 견지하고자 했다. 인간의 생활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 정치와 전쟁 같이 충격적인 사건들은 한 때에 불과한 '물거품'이다. 반면 지리, 기후, 그리고 사람들이 이루어 온 사회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날학파는 변하지 않는 것들을 다룸으로서 '전체적 역사'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 덕분에 이전에는 경시되었던 인간생활의 수많은 영역이 역사학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페르낭 브로델의 역작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가 애널학파가 바라보고자 하는 역사를 단적으로 나타내준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모두가 알듯이 마르크스의 대범한 '공산당 선언'으로부터 출발한다. '한 마리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한다고 운을 뗀 마르크스는 곧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임을 선언한다. 이는 인류의 역사가 지배 계층으로부터 투쟁을 통해 원하는 것을 쟁취하여 평등한 사회를 이룩해나가려는 꿈이 인간 역사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억압받고 착취당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천착하고 있는 것은 바로 '계급 투쟁'이다. 계급은 무엇에 따라 결정되는가?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사회를 물질적 경험인 하부 구조와 정치, 사상, 도덕, 문화 등을 포함하는 상부 구조로 나눈다. 마르크스주의는 하부 구조가 곧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고 주장하며, 이는 "먹는 것이 먼저요, 윤리는 나중"이라는 말이 이를 잘 표현한다. 계급은 이러한 물질적 경험의 차이, 즉 자본 혹은 토지와 같은 생산 수단의 보유 여부가 계급을 결정한다. 계급 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혁명을 통해 봉건 계급을 타파한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에 의해 타파될 운명인 것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회사도 여러 분명한 한계점이 부각된다. 아날학파는 전체 역사를 규명하겠다는 자신만만한 야심을 밝혔지만, 실제 아날학파가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큰 의문이 남는다. 장기지속, 중기지속, 사건이라는 세 개의 분석 차원에 기술했지만 인간의 모든 면을 파악하기에는 지나치게 부족하다. 민중들 생활의 물질적인 측면을 계량화하여 기술한 결과 그 시대의 개인 혹은 집단이 생각했던 방식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저명한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오히려 상부 구조라고 믿었던 사상과 문화가 역으로 하부 구조인 물질 문명을 결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거시경제학의 창시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역작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다분히 프로파간다적이라는 것이다. 억압받던 계층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인간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함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혁명 정신을 설파하고 선동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즉, 이 방법론에서도 민중은 계급 투쟁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부품으로밖에 취급받지 못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인간에 관한 학문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와 하나의 길에 관한 학문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아날학파와 마찬가지로 물질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실수를 저질렀다. 경제는 인간 사회의 극히 작은 하나의 부분에 불과하다. 일반 시민이라고 할지라도 빵과 치즈만이 인생의 유일한 관심사는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가 주장한 '신문화사'라는 새로운 역사적 방법론은 고무적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뿐만 아니라 '어떻게 생각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두껍게 읽기', '다르게 읽기', '작은 것을 통해 읽기', '깨뜨리기'의 방법으로 새롭게 역사적 사건 혹은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인간에 관한 학문이라는 역사학의 본질에 한 단계 다가가는 시도인 것이다. '두껍게 읽기'를 통해 객관적 사실만을 엄밀하게 다루고자 한 종래의 과학적 역사의 좁은 식견에서 벗어나고, '다르게 읽기'를 통해 승자에 의해 쓰인 역사에서 더 나아가 패배자의 관점으로 역사를 봄으로써 역사의 중심을 흔들고, '작은 것을 통해 읽기'로 역사를 지배해온 '큰 사람들'에서 벗어나 '작은 사람들'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며 궁극적으로 '깨뜨리기'를 통해 기존 역사학의 틀을 깨뜨려 새로운 관점으로 새로운 틀을 만들어 역사를 새롭게 보자는 것이 신문화사이다.
물론 신문화사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작은 것을 통해 큰 것을 볼 수 있는가? 즉 일반 사람들이 전체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또 오늘날의 문화를 통해 진정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자본주의 체제가 너무도 깊이 뿌리내린 우리 사회는 종종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기업들의 현란한 마케팅과 그로부터 탄생한 소비문화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 나아가 문화 전체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이런 과감한 시도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역사학은 인간의 학문으로서 남아 있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변화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