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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Jul 26. 2023

봄날은 간다

  어릴 때 내가 제일 예뻐했던 여동생이 있었다. 걸음을 떼면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글을 깨우치고 오빠들 책을 읽곤 해서 식구들을 놀라게 했다. 그런 동생을 보고 어른들은 세상천지에 어떻게 해서 저리도 예쁘고 똑똑한 게 우리 집에 뚝 떨어졌냐고 경탄을 금치 못하셨다.


  할아버지가 살던 마을로 이사했던 다음 해 봄날이었다.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던 날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그 여동생은 새 운동화를 꼭 신고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어머니는 오늘은 비가 오니 다음에 소풍 갈 때 신고 가라고 혼내 킨 모양이었다. 항상 눈치도 빠르고 말도 잘 듣던 동생이 그날따라 왠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 첫 시험을 보는 날이라 등교 시간이 촉박해서 덩달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결국 나는 동생을 두고 혼자서 휑하니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내달렸다.


  오전에 시험을 치르는 동안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고 손바닥에서 젖 냄새 같은 우유 냄새가 계속 났다.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는데 시험시간이 다 끝나기도 전에 선생님께서 빨리 집에 가보라고 했다. 집에 당도해 보니 그야말로 온통 울음바다 그 자체였다. 특히 어머니가 몸부림치면서 우시던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침에 동생이 혼자서 버스를 타려다 신작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핏기 하나 없는 동생의 얼굴은 대리석처럼 하얗고 편안하게 잠자고 있는 것 같았다. 뇌출혈로 현장에서 급사했다고 했다. 나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아침에 자전거에 태워서 함께 학교에 갔더라면 이런 끔찍한 사고가 없었을 텐데 하는 죄책감이 앞섰다.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보았다. 신작로 옆 개울에 동생의 새 운동화 두 짝이 한 개씩 내동댕이쳐진 채 엎어져 있었다. 동생의 주검을 보고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가 죽었으니 장례라고 할 것도 없었다. 어른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막아서 어디에 어떻게 묻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운동화 두 짝과 가방을 함께 묻어달라고 가져다 드렸다. 동생이 떠나는 집 앞 언덕에는 진달래 꽃망울만 연분홍색으로 눈물 속에서 흔들거렸다.


  그렇게 봄날에 떠난 동생은 한동안 내 꿈속에서 여전히 잘 웃고 재잘거렸다. 하지만 여러 해가 지나면서 그 모습조차 희미해졌다. 세상을 방문할 때는 순서가 있지만 떠날 때는 아닌 모양이다. 한참 사춘기 때 동생의 죽음은 내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인간의 운명은 예정되어 있는 것인지, 죽음 이후에는 어디로 가는지, 여러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진달래 꽃망울이 맺히는 봄날에 비라도 내리면 그 동생이 유난히 보고 싶다. 지금 살아있으면 이제 다 커서 연분홍 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있으려나. 올해도 속절없이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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