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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Jul 26. 2023

돈은 보냈냐

  새벽 3시쯤이었다.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 단축키를 눌러 나한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귀에 대면 당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뚝 끊기 일쑤였다. 잠에서 덜 깬 채로 건성으로 대답하거나 화도 내봤지만 그건 이미 끊긴 전화기 너머에 대고 하는 말이었다. 다시 전화를 거는 것이 부질없다고 생각하면서 불쑥불쑥 울리는 전화벨에 화풀이할 때가 있었다. 


  만년에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에 장애를 입는 고생을 한 뒤로 혈관성 치매까지 걸렸다. 매사를 어머니한테 의지하면서 호랑이 같던 기세는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더구나 시골집과 시내를 운전하던 낡은 트럭을 처분하고부터는 별다른 낙도 없으셨던 것 같다. 그나마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십일조라 생각하고 매달 통장에 넣어드리는 용돈을 찾으러 읍내에 나가는 일이 유일한 낙이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오일마다 열리는 장날만 기다렸다 다리가 불편한데도 버스를 타고 읍내에 다니셨다. 그런 날은 말끔하게 면도까지 하신다. 어머니와 함께 장구경을 한 뒤 좋아하는 국밥이나 삼계탕을 사서 나누어 드셨다. 특별한 일이 없는 시골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였을 것이다. 


  그러던 아버지가 조금씩 치매증상이 심해지면서 변하기 시작하셨다. 치매초기만 해도 용돈을 드릴 때마다 고맙다거나 고생한다고 했다. 치매가 심해지자 그런 인사말은 아예 잊어버리신 것이다. 통화내용도 당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나서 대답을 들을 것도 없이 바로 끊었다. 그러다 벌써 결혼까지 한 큰 손자, 둘째 손자가 대학은 들어갔는지, 군대 갈 때 입고 간 옷은 보내왔는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그것을 설명하느라 한참 애를 먹어야 했다. 결국에는 말수가 적어지고 딱 두 마디 “돈은 보냈냐”면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전화를 걸고 끊기를 반복하셨다.


  결국 아버지는 혼자 읍내 장터를 돌아다니시다 차에 치여 집으로도 못 오고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올해도 추도예배를 드린 것이 벌써 3주기인데 아직도 아버지 목소리는 새벽녘에 가끔씩 환청으로 들려온다. 아버지 생전에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전화 속의 쉰 쇳소리에 짜증이 나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깟 몇 초도 못 기다리고 전화가 빨리 끊어지기를 바랐는데 오늘은 천천히 몇 번이고 반복하여 말씀드리고 싶다.


  “예, 벌써 보냈어요. 오늘 나가서 통장 찍어 보세요. 버스 탈 때 조심하시고요. 우체국에 가시면 한꺼번에 돈 다 찾지 말고 오늘 필요한 만큼만 찾아 쓰세요. 그런데 아버지 혼자만 돌아다니지 말고 꼭 엄마 손 잡고 다니세요. 오늘따라 아버지 목소리가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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