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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Jul 26. 2023

천사가 못생기고 불친절해

  책꽂이 과포화 상태를 막으려고 정리하다 틈새에 껴 있는 자료집을 발견했다. 몇 해 전의 특별했던 강좌와 한 학생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새벽마다 골프연습장에서 자주 만나던 교수 한 분이 계셨다. 이번 학기에 인성교육 관련 강좌를 개설하는데 수강생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 많은 학생을 혼자 감당할 수 없으니 저녁에 열리는 직장인반이라도 좀 맡아달라고 한다. 몇 번을 사양하다 결국 골프 라운딩 때 땜빵을 해준 의리를 갚는 셈 치고 별생각 없이 그러자고 했다.


  강좌이름이 ‘인성교육과 영화’였다. 영화라면 나도 누구 못지않게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TV에서 나오던 ‘주말의 명화’를 빠짐없이 시청했고 사춘기 때 내 꿈이 영화감독이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비평가도 아닌 내가 어떤 시각으로 영화 속의 이야기를 해석하고 인성교육과 연결해야 할지는 막막했다. 결국 그 교수와 상의하여 우선 서너 편의 영화를 골라 시청한 뒤 토론수업을 전개하기로 했다.   


  그 학기에 고른 영화는 세편이었다. 장예모 감독의 ‘인생’, 인도영화 ‘세 얼간이’ 그리고 ‘어바웃 타임’이었다. ‘인생’은 중국 근대사의 한복판에서 한 남자와 그 가족의 굴곡진 삶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 얼간이’는 인도 최고의 공과대학인 ICE를 배경으로 천편일률적인 교육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에피소드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어바웃 타임’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반복되는 시간여행을 통해 인생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의 공통점은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다. 저녁마다 강의실 칠판에 투사된 영화를 숨죽이며 보던 학생들은 이 새로운 형태의 강좌에 점점 빠져들었다. 한 학기가 끝날 무렵 우리 반 수강생들은 에세이를 포함한 포트폴리오를 제출했고 나는 학생들이 쓴 이야기를 편집하여 토론 자료로 나누어 주었다.


  세 편의 영화에 대한 서른아홉 명의 스토리는 의외로 재미있었고 영화보다 더 깊은 감동을 주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때로 웃어 제켰고 때로는 눈물을 쏙 빼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한테 역시 아버지는 어렵고 가까이 가기 힘든 존재면서도 연민의 대상이기도 했다. 다음은 한 학생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영화 ‘인생’의 주인공처럼 당신의 인생을 평탄하게 살지 못하셨다. 택시 운전을 하던 아버지는 남편으로서는 형편없었지만 나한테는 자상하고 유쾌한 분이셨다. 그러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아버지가 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1년 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가족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루하루 불안과 슬픔이 계속되었다.


  대학 입학 후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느 날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아버지 숨이 멎는 중이라고. 그 길로 수업 중이던 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향했다. 마음은 급한데 버스표가 없었다. 사정 이야기를 하니 간이 의자를 내주었다. 버스 통로에 쪼그리고 앉아서 가는 동안 내 어린 가슴은 쿵쾅쿵쾅 뛰었다.


  도착해 보니 아버지는 입에 호스를 3개나 문 채 아직 기적적으로 살아계셨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들어온 우리 가족을 보자 펜을 들어 어렵게 글씨를 썼다. ‘간호사가 못생기고 불친절해’. 그때 우리 가족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잠시나마 긴장의 끈을 놓고 환하게 웃었다.


  아버지가 일반 병실로 옮긴 뒤 병세가 좋아지는가 싶더니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휴학 중이던 내가 간병을 했다. 병원 생활은 불편했고 지루한 감옥 같았다. 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잠만 잤다. 하루하루 야위어가는 아버지와 달리 나는 날마다 살만 찌고 있었다.


  병원에 온 지 석 달이 지나고 추석 이틀 전이었다. 아버지는 항문에 힘이 약해지면서 속옷에 똥을 묻히기 시작했다. 아버지 속옷을 사러 가던 중에 고모한테 연락이 왔다. 고모는 기저귀를 쓰라고 했다. 가던 길을 되돌아와 아버지한테 기저귀를 쓰면 어떻겠냐고 했다.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고 나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날 우리 부자는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어색하게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엄마와 동생이 올라왔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버지 병실을 떠나 대전으로 왔다. 추석이라 만날 친구도 없었던 나는 3일 내내 아무도 없는 집에서 게임만 했다. 하지만 마음은 젖은 솜처럼 무겁기만 했다. 그렇게 추석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느낀다. 나는 좋은 아버지는 되지 못할망정 사랑하는 사람 곁을 그렇게 빨리 떠난 못난 아버지는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유언하나 남기지 않은 아버지가 생전에 늘 하던 말씀이 있다. ‘내가 없으면 네가 이 집의 가장이다’. 아직은 내가 학생이라 우리 엄마를 호강시켜드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곧 졸업해서 정식으로 직장을 갖게 되면 아버지 때문에 고생하신 엄마한테 두 배 세배로 잘해드리고 싶다.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아버지를 다시 만나면 그 대가는 이자까지 쳐서 받아낼 것이다.


  학생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마치 내가 다 하지 못한 말을 대신해 주는 것 같다. 그 학생의 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을 것 같다.   


 ‘천사가 못생기고 불친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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