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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Aug 17. 2023

아버지가 바른 빨간 매니큐어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시골의 고등학교 동창이 네 명이다. 퇴직 후에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만나자고 약속한 사이다. 번갈아 가며 식사 자리를 마련하여 정담을 나누다 보니 부모님 이야기도 나왔다. 대부분 돌아가셨는데 한 친구의 아버님이 아직 시골집에 혼자 사신다. 


  지난 주말에 넷이 모여 그 친구의 시골집을 방문했다. 돌아가신 다음에 장례식장에 찾아가 밤새워 운다고 무슨 소용이 있냐는 말에 모두 의기투합한 결과다. 그 친구 아버님은 몇 해 전만 해도 읍내 출입도 하시고 내가 가면 색소폰 반주에 맞춰 흥겹게 노래까지 부르시던 분이다. 


  다시 뵈니 연로하신 모습이 역력하다. 깊이 팬 주름과 움푹 꺼진 눈이 안쓰럽다. 수박 한쪽을 겨우 드시더니 당신은 더 이상 못 먹으니 우리한테만 어서 먹으라고 연신 권한다. 일어서는 것도 힘겨워하셨지만 나와 그 집 아들의 반주에 맞춰 좋아하시는 노래를 2절까지 다 불렀다. 전과 달리 음정과 박자는 모두 엉망이다. 하지만 좋아하시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게 역력하다. 


  헤어질 시간이다. 처음 뵈었을 때 큰절을 올렸어야 했다. 대문 앞까지 나오신 분한테 그냥 허리만 숙여 몇 번이고 인사를 드렸다. 친구의 시골집에서 나와 칠갑산 주차장 앞에서 버스킹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옥카페에 들렀다. 팥빙수를 먹는 데 달달하면서도 아주 차갑다. 문득 그 어르신의 온기 없이 차가운 손이 자꾸 떠올랐다. 근사한 고택의 처마와 토방을 바라보며 큰 절을 못했으면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드렸어야 하는 데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친구 녀석들은 버스킹 때 동영상을 찍으며 환호하던 그 외국여자가 생각나서 그러냐고 놀린다. 먼 산만 바라보는 내가 궁금한 모양이다. 문득 아버지의 손톱에 칠해진 빨간 매니큐어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격리병실에서 간병인 아주머니와 함께 서너 달을 보냈다. 면회를 가면 손을 내미는 데 열손가락이 아주 빨갛게 칠해져 있어 놀랐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심심해서 매니큐어를 발랐다고 한다. 치매가 있는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빨간 손톱을 보여주었다. 


 그때 나는 그랬다. 아버지가 내민 손을 선뜻 잡아주지 못한 것이다. 평생 무섭고 독재자 같은 아버지한테 빨간 매니큐어라니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내 심정은 요샛말로 ‘헐’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누군가의 손을 잡는 일에 서툴다. 환갑이 한참 지났어도 고쳐지지 않는다. 다음에 친구의 아버지를 만나면 오래도록 손을 잡아드려야겠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도 따뜻하게 손을 잡은 기억이 없다. 아버지도 나도 손을 내미는 게 어색하고 손잡는 것에 인색한 시대에 살았던 탓일지도 모른다. 


  혹시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손부터 잡아봐야겠다. 아직도 빨간 매니큐어를 칠하고 계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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