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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Aug 17. 2023

삼장고개 쇠똥구리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산길 중간쯤에 높다란 언덕배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삼장고개라고 불렀다. 넓은 묘지 마당이었다. 누가 시작한 이야긴지 모르지만 삼장고개 꼭대기에서 맨 아래까지 한 번에 굴러가면 3년씩 젊어진다고 했다. 심지어 어느 노인은 하도 욕심을 내어 구르다 보니 아들보다도 어리게 변했고, 집에서조차 알아보지 못해 아예 쫓겨났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온다. 


  학교를 마치고 그 먼 산길을 혼자 걸어서 집에 가는 것은 무섭고 심심한 노릇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중간에서 아이들을 만나 놀던 곳이 삼장고개다. 책보를 집어던지고 산소 뒤에 숨어서 술래잡기도 하고 아예 따끈하게 데워진 산소 앞 상석에 엎드려 공책을 펴놓고 받아쓰기 같은 숙제도 했다. 우리 같은 머시매들은 언덕 꼭대기에서 미끄럼을 타거나 데굴거리면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신나게 놀았다.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나이를 거꾸로 먹다가 집에서 쫓겨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재수 없게 잘못 뒹굴다 보면 쇠똥더미에 엎어질 때도 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시큼한 풀냄새와 썩은 지푸라기 냄새가 섞여 나는 쇠똥더미에 처박혀 주위를 가만히 살펴보곤 했다. 마르다만 쇠똥덩이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기 마련인데 자세히 보면 뭔가 열심히 움직이는 녀석이 있다. 바로 쇠똥구리다.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 뒷다리로 쇠똥을 뭉쳐 공처럼 굴리고 있는 게 신기했다. 그 녀석은 검고 단단한 갑옷을 등에 지고 큼직한 톱날을 편 앞발과 길쭉한 뒷발이 매력적인 순한 녀석이다. 대개 두 마리가 자신들 몸집보다 훨씬 큰 쇠똥 공을 앞뒤에서 서로 밀고 당긴다. 한참 동안 지켜보면 결국 쇠똥을 서로 차지하려는 경쟁이었다. 조무래기들은 마치 학교 도서관에서 본 파브르의 곤충기에 나오는 주인공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묘 마당 잔디밭에 납작 엎드려 쇠똥구리 친구들이 무엇을 하나 열심히 관찰하곤 했다. 


  지금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이런 풍경은 사라지고 없다. 쇠똥구리를 복원하려고 정부에서 한 마리에 백만 원씩 현상금까지 걸었지만 허사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시골에서 소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텃밭 근처나 언덕배기 같은 곳에 매 놓고 풀을 먹였으니 쇠똥구리를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흔하던 쇠똥구리는 아이들의 친구요 움직이는 장난감이었다. 지금은 모든 소를 축사에 가둬 놓고 사료에 항생제까지 먹이니 쇠똥구리 전멸은 예견된 일이다. 


  더 이상 쇠똥구리가 소똥을 먹어 치우지 않으니 축사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냄새 때문에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예전에는 외양간이 마당에 붙어 있어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소한테 풀 뜯기고 소죽을 쑤어 먹였던 때는 냄새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소똥은 반가운 존재였다. 들판에 널린 소똥은 보는 사람이 임자였다. 서로 주워다 텃밭에 거름으로 썼고 나머지는 쇠똥구리가 모두 분해하여 청소를 담당했던 것이다. 아마 쇠똥구리가 없었다면 들판이며 언덕이 온통 소똥 천지였을 것이다. 


  한 백 년쯤 후 삼장고개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쇠똥구리 녀석이 다시 나타나 아이들과 다시 놀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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