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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인 Aug 31. 2023

우리들의 일그러진 꼰대

  젊은이들은 우리 세대를 꼰대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우리 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버릇없다고 표현한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세대는 참 지랄 맞다. 우리 부모 세대는 자식이 뭐라고 하면 우리가 뭘 알겠냐며 니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던 세대였다. 그분들 입장으로 보면 태반이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던 가난한 시대를 살았다. 자식들은 천지개벽한 시대를 살아가니 간섭하고 말 것이 없었다. 그에 반해 우리 세대는 자식이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면 네가 뭘 아냐고 온갖 참견과 간섭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세대가 되어버렸다. 요샛말로 꼰대 세대다.


  몇 년 전 여름에 한국 철도 100주년을 계기로 개최된 시베리아 횡단 열차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나이 든 사람과 젊은이들이 한데 모여 축제처럼 어울렸다. 첫날 바이칼 호수 근처 숲 속에서 하룻밤 자고 난 뒤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러시아 정부에서 특별 편성했다는 기차를 타고 몇 날 며칠을 함께 먹고 자면서 광활한 평원을 끝도 없이 달렸다. 마침 소설가 이문열 씨도 같이 갔으니 우리 일행은 침대칸에 앉아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한국전쟁 이후 혼란스럽던 시대 시골 학교의 작은 교실에서 일어났던 권력과 복종, 집단과 개인의 이야기다. 등장인물은 엄석대와 한병태다. 우리 또래치고 이 소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책으로 영화로 보았고 서울까지 가서 혜화동 소극장에서 연극으로도 보았던 추억이 있다. 찬찬히 뒤돌아보면 우리 세대는 그야말로 그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흡사한 시대를 살았다. 우리 중 누구는 엄석대였고, 그 반 아이들이었고, 서울에서 온 한병태였다. 


  우리 세대는 젊은이들이 너무 이기적이고 버릇이 없다고 한다. 젊은 세대는 말끝마다 나 때는 말이야 하는 우리를 라떼 또는 꼰대라며 외면한다. 하지만 꼰대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젊은이도 없고 젊은이들이 없다면 내일의 희망도 없다. 다행히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던 우리 일행을 보니 미래가 보였다. 여러 날 고생을 같이해보니 젊은이들이 이기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리 분별이 분명하고 야무지다고 느꼈다. 우리 일행은 젊은이들이 버릇없다는 것은 오해였다는 데 맞장구를 치면서 덜컹거리는 구식 기차에 몸을 맡겼다.


  열흘 가까이 헐떡이며 가던 기차가 결국 벌판 한가운데 멈춰 서고 말았다. 기차가 움직이지 않으니 에어컨이 멈췄고 열린 창문으로 모기가 집단으로 달려들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낭만이고 뭐고 영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며칠 동안 샤워는커녕 비좁은 세면대에서 가져간 골프공으로 배수구를 막아 고양이 세수만 했으니 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없었다. 한나절 넘게 기다린 끝에 겨우 다음 역에 도착할 수 있었고 수많은 일행이 일제히 역광장 근처의 샤워장으로 내달렸다. 


  무슨 군대 시설 같은 이층짜리 목욕시설이었는데 천장에 달린 샤워 꼭지에서 물이 나오기는 하는데 꼭 돼지 오줌 지리는 듯 감질나게 나왔다. 그래도 모처럼 머리도 감고 몸에 열심히 비누칠하느라 정신없던 순간 갑자기 정전되었다. 당연히 물도 나오지 않았다. 모두 발가벗은 꼰대들은 온몸에 허연 거품을 묻힌 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방에서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소련이 망하더니 개판이라면서 우리를 뭐로 보고 이런 대우를 하냐고 난리였다. 젊은이들이 어떻다고 맞장구치더니 결국 나이 드신 우리 일행은 여지없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꼰대’였다. 


 그래도 우리 젊은이들은 대견했다. 먼저 샤워하라고 한 자신들의 잘못이란다. 우선 자기의 수건으로 비눗기부터 닦고, 정 급한 분은 자신이 마시던 생수라도 뿌리라고 한다. 비누 범벅은 했을지언정 우리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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