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퇴고, 다시 되돌아보는 나

by 뭉게 뭉게

처음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그저 ‘한 번 해보자’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었다.
1장에서 던졌던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솔직히 말하면, 반은 자기위로였다.
하지만 장을 하나씩 넘길 때마다
그 질문이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하고 돌아왔다.


1장의 불안,
2장의 상처 같은 말들,
3장의 목차 실험,
4~7장에서 배운 구조와 리듬,
11~17장의 두려움·관찰·근육 만들기,
18장의 고백,
19장의 온도,
20장의 속도,
21장에서 다시 다진 퇴고의 기술까지—

그 모든 투박한 과정들이
어느새 나를 ‘쓰는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어떤 날은 도전이고, 어떤 날은 위로였고, 또 어떤 날은 경고였다.
그러는 동안 나는 어느새 ‘잘 쓰는 사람’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퇴고를 하다 보면 그 사실이 더 분명해진다.
퇴고는 문장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그 문장을 썼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다.
어린아이가 행복한 건 되돌아보고 자책할 과거가 없어서라고 한다
어른이 된 우리는 반대로 과거에 너무 자주 발목을 잡힌다.
좋았던 순간보다 상처 난 장면이 더 쉽게 떠오르고,
마음속 스크린샷 기능은 왜인지 늘 ‘안 좋았던 순간’에만 자동 저장된다.


이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퇴고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
“내가 왜 이 문장을 이렇게 적었지?”
“이때의 나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러다 또 문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아이고, 이건 누가 봐도 오버였다… 그냥 지우자.”

이런 유머 섞인 자기 대면이 퇴고의 묘미다.
예전에 어느 선배 작가가 말했다.
“퇴고는 화장실 거울 보는 거랑 똑같아.
나만 보이는 작은 흠을 발견하고,
때론 ‘어? 여기 괜찮네?’ 하면서 자신감도 얻지.”
그 말이 왠지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위로가 되었다.

퇴고 안에서 나는 과거만 들여다보진 않는다.
미래를 상상하는 시간도 있다.
우리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지.
그렇다면 가능한 한 자세하게 상상해야 한다.
조금 더 단단해진 나,
조금 더 평온해진 나,
그리고 쓰는 일을 계속하는 나.

퇴고는 그 상상을 현실 쪽으로 조금씩 끌어당기는 과정이다.

글도 사람처럼 마음이 간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떤 사람은 정감이 가고
어떤 글도 이유 없이 좋다.
그 반대도 있다.
아무 문제 없는 문장인데도
어딘가 멀게 느껴지고 가까이 가기 싫은 글이 있다.
이제는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진실이 빠지면 글은 결국 들킨다.
사람관계가 진실 위에서만 유지되듯
글도 진실 위에서만 독자를 만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는다.

“나는 이 글에서 얼마나 진실했을까?”
완벽하게 진실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실해지려는 마음은 문장 안에 남는다.
그 흔적이 글의 결을 만들고
그 결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내 삶의 단면들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젊었을 때는 허세가득한 친구들과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방황했고,
결혼하고 나서는 가족이라는 책임 속에서 ‘나는 어디쯤 서 있나’를 헤맸다.
마흔이 넘으면 승진과 경쟁이 무게로 다가오고
쉰이 되어 뒤돌아 보면 지나온 세월이 왠지 허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준비안된 미래가 깊은 무게로

나를 누르기 시작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건만 돌아보면 또 무언가를 확실히 이루어 논 것은 없는 것 같다

참, 인생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긴 세월이 내게 한 가지는 확실히 알려주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길 바라기 전에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단순한 진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글쓰기는 마음이 흐트러진 나를 붙들어 세우고,
잊고 지내던 나를 다시 데려오는 과정이다.

힘들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만
살아보니 떠나는 데도 이유가 필요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 떠나는 건 괜찮다.
하지만 지금이 싫어서 떠나는 건 조금 더 고민해야 한다.
지금이 싫어서 떠나면
대부분 도착지에서도 같은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문제를 만든 원인을 들고 떠나기 때문이다.
퇴고는 이 사실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문제의 핵심을 바꾸지 않으면 글도, 삶도 반복된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건 힘이 아니라 꾸준함이라고 한다.
끝까지 버틴 사람이 결국 이기고,
끝까지 읽은 사람이 결국 이해하고,
끝까지 쓰는 사람이 결국 ‘쓰는 사람’이 된다.
나이가 들면 포기할 이유는 늘어나지만
그래서 더 묻게 된다.
“지금 내가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 하나가 사람을 다시 일으킨다.

퇴고는 그런 질문들을 조용히 데려오는 시간이다.
글을 고치는 동안 내 마음도 조금씩 정리된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가 한 문장 위에서 만나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나’가 완성되어간다.

나는 아직도 작가인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성장은 문장 때문이 아니라
문장을 쓰면서 나를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이제 에필로그에서는
이 여정을 마친 나에게
아주 조용히, 아주 솔직하게 말을 건네려 한다.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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