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고백
한때 '90년대생이 온다'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다. 회사에서도 권장도서로 돌려 읽었고, 나 역시 의무감 반, 호기심 반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책을 다 읽은 뒤 같이 읽었던 J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그 책 어떠셨어요?"
J 선배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90년대생 나쁜 놈들."
그 순간 우리는 마주 보고 폭소를 터뜨렸다.
나도 책을 읽는 내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속칭 'MZ세대'에 대한 우리의 오해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내 어린 시절, 가끔 나이 지긋한 부장이나 임원들이 젊은 직원들의 술자리에 불쑥 나타나곤 했다. 그들은 으레 이런 말을 했다.
"젊은 기운 좀 받으러 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는 '노망 났나?' 싶었다. 젊은 기운을 받겠다며 상석에 버티고 앉아서는 온갖 무용담과 잔소리를 쏟아내며 왕처럼 군림하는 모습이 가증스럽기만 했다. 젊은 기운은커녕 그 자리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았다.
하지만 최근 해외여행에서 선배, 후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깨달았다. 그 말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만난 지금 세대는 정말 달랐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달랐다.
가장 놀라운 건 그들의 절제력이었다. 선배가 술을 따라줘도 무조건 받아 마시지 않았다. 자신의 주량에 도달했다 싶으면 과감하게 호텔 로비로,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숙취로 죽어가는 선배들과 내 동년배들을 뒤로하고 그들은 너무나 쌩쌩하게 여행을 즐겼다. 그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약간은 얄밉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목격한 그들의 또 다른 면모는 놀라운 친화력이었다. 선배들이 버젓이 있는데도 놀러 온 여대생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셀카를 찍어댔다. 우리 세대 같으면 선배 눈치를 보느라 벌벌 떨었을 텐데, 이들은 그런 경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해가 지고 선배들과 동기들이 전부 식당과 술집에서 삼삼오오 모여 술병을 기울이고 있을 때였다. 후배들은 시내 관광을 나섰다.
술도 지겹고 가봐야 좋은 꼴 못 보겠다 싶었다. '오늘 내 지갑은 내 것이 아니라 저들의 것'이라는 마음을 탑재하고 후배들의 시내 관광에 따라나섰다.
젊은 친구들은 정말로 여행 자체를 즐겼다. 뭘 하는지 모를 가게에 과감하게 들어갔다. "여기가 뭐 하는 곳이에요?"라고 물어보고는 신기해했다.
길거리 노점에서는 '저런 걸 먹어도 되나?' 싶은 음식을 주저 없이 사 먹었다. 예쁜 장소가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가서 단체 사진을 찍어댔다. 해외에서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을 사 먹다가 실패해도 찡그리는 법이 없었다. 그냥 그 자체를 받아들였다. 그 자세가 너무 예뻐 보였다.
고백하자면, 나도 꼰대다. 심각한 수준의 꼰대다.
팀 막내가 술 마시고 부장보다 먼저 임원이 따라주는 술잔에 잔을 들이밀었다. 나는 그걸 보고 혼냈다. 팀이 상을 받으러 단상에 올라가는데 막내가 부장보다 먼저 올라갔다. 따로 불러서 훈계했다.
따지고 보면 나도 피해자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이번 여행으로 깨달았다. 그들은 예의가 없거나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 세대와 사고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었다. 오히려 많은 장점을 가진 친구들이었다.
어쩌면 진짜 '젊은 기운을 받으러 온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그들의 자유로움, 그들의 솔직함, 그들의 경계 없는 호기심을 배우는 것 말이다.
나는 이제 안다. 세대 차이라는 건 벽이 아니라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가끔은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배워야 할 때가 있다는 것도.
다음번에 나도 "젊은 기운 받으러 왔다"라고 하며 나는 진짜로 그 기운을 받아보려고 한다. 상석에 앉아서 무용담을 늘어놓는 대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