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할아버지에게는 변하지 않는 루틴이 하나 있었다. 우리 집에 오시면 절대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 부모님이 가게를 하느라 바쁜 탓도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데리고 나가셨다. 자장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옆 빵집에서 팥빙수를 시켜주시는 것이 우리만의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할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저 멀리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바람에 굴러가고 있었다. 지금이야 천 원이 작은 돈이지만, 당시 천 원이면 지금의 만 원 정도 되는 큰돈이었다. 나는 할아버지 손을 뿌리치고 달려가 그 돈을 집어 들었다.
"할아버지, 나 천 원 주웠어요!"
할아버지는 나를 웃는 얼굴로 바라보시더니 천 원을 가져가셨다. 그러고는 돌멩이 하나를 주워와 천 원짜리 위에 올려놓으셨다. 어린 마음에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천 원이면 삼백 원짜리 빵빠레를 세 개나 사 먹고도 백 원이 남는 돈이었는데.
"할아버지, 저렇게 두면 누가 가져간다고요."
할아버지는 웃음을 머금으시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네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탐내지 마라.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 해도, 네 것이 아닌 것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덧붙이셨다. "우리가 먼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먼저 하지 않는단다."
어린 마음에 그런 할아버지가 참 답답하고 원망스러웠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복잡한 마음이 든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여전히 남의 것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고, 선량한 사람들이 손해 보는 일도 많다.
요즘 한국 사회의 신뢰 문화를 자랑하는 콘텐츠들을 볼 때면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카페에 휴대폰을 두고 가도 안전하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물론 모든 곳이 그런 건 아니고, 여전히 조심해야 할 곳들도 많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곳에서는, 어떤 순간에는 그런 신뢰가 통하는 게 사실이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이런 문화도 누군가는 처음 시작했을 것이라고. 할아버지처럼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옳다고 믿는 일을 묵묵히 실천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그분들이 할아버지만은 아니겠지만, 할아버지도 그런 분들 중 한 분이었을 것이라고.
할아버지께서 그 천 원짜리 지폐 위에 올려두신 돌멩이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건 단순한 무게추가 아니었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미음이었고, 그 바람을 실천으로 옮기는 용기였다. 비록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어쩌면 그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거창한 변화를 꿈꾸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것. 그리고 그 작은 시작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