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볼트의 왕좌

by 이선우

남해의 외딴섬, 해원도(海原島) 실내체육관의 공기는 기체라기보다 액체에 가까웠다.

수백 개의 폐가 뱉어낸 이산화탄소, 며칠째 갈아입지 못한 속옷에서 올라오는 쉰내, 눅눅해진 컵라면 용기의 종이 냄새, 그리고 바닥에 눌어붙은 절망의 비린내. 이 모든 것이 소금기 머금은 해풍과 섞여 끈적한 막을 형성했다. 숨을 쉴 때마다 폐부 깊숙이 곰팡이가 스는 기분이었다.

그 곰팡이 낀 공기의 한가운데, <대한일보> 특별취재팀 김형석 팀장이 앉아 있었다.

그의 자리는 체육관 오른쪽 구석, 흰색 멀티탭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기둥 옆이었다. 이 아수라장에서 권력은 단상 위에 있지 않았다. 노트북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220볼트의 구멍, 그것이 생사여탈권을 쥔 왕좌였다. 전기가 끊기면 마감도, 밥줄도 끊긴다.

김형석은 사흘 전 관리인에게 법인카드로 20만 원짜리 홍삼 세트를 쥐여주고 이 왕좌를 샀다. 영수증 처리 내역은 ‘취재원 보호 및 섭외비’. 그는 뇌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진지를 구축하는 필수적인 비용 집행이었다.

형석은 나무젓가락으로 퉁퉁 불어터진 육개장 사발면을 휘저었다. 면발이 툭툭 끊어졌다.

3일 전, 그는 바로 이 자리 근처에서 안전행정부 장관이 쭈그리고 앉아 컵라면 먹는 모습을 찍어 ‘황제 라면’이라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공감 능력 없는 사이코패스"라는 댓글이 3천 개가 달렸다. 형석은 그 댓글들을 보며 인근 서진시(瑞津市) 횟집에서 민어회 뱃살을 씹었다.

지금 그는 장관과 똑같은 라면을 먹고 있다. 하지만 죄책감은 없다. 밥은 밥이고, 기사는 기사니까. 장관은 공인이고 나는 생활인이니까.

지이잉.

스마트폰이 짧게 울렸다. 테이블 위에 엎어둔 폰 화면에 미리 보기 메시지가 떴다.

[박 상무: 형석아 고생이 많다. 나 지금 서진시 현장 내려와 있는데 얼굴 좀 보자. 상동 쪽에 물 좋은 오피 하나 뚫어놨다. 서울에서 갓 내려온 애들이라는데 오늘 밤 어때? 내가 쏜다.]

형석의 미간이 꿈틀했다. 위장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라면 국물 때문인지, 아랫도리의 욕망 때문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서진시 상동 신시가지. 여기서 차로 40분.

그는 힐끗 주변을 살폈다. 옆자리 타사 기자는 타자를 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형석은 재빨리 답장을 쳤다.

[콜. 9시까지 넘어갑니다. 형님만 믿습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데스크의 쪼임도, 유가족의 통곡도 이 순간만큼은 음소거가 되었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였다. 며칠간 시체 썩는 냄새를 맡으며 버틴 자신에게 주는 유일한 보상. 공짜 술에 공짜 여자. 이 정도도 못 챙겨 먹으면 그게 기자인가.

지이잉.

답장이 오기 전에 다른 메시지가 먼저 떴다.

[사회부장: 야. 한국뉴스 '컵라면과 눈물' 조회수 봤냐? 지금 댓글 민심이 그쪽으로 다 쏠렸어. 우린 뭐 없어? 놀러 갔냐? 30분 내로 톱기사 안 보내면 편집국장실 호출이다. 이번에 해외 연수 가고 싶다며? 여기서 낙종하면 물 건너가는 줄 알아.]

형석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입맛이 싹 달아났다.

보상과 처벌이 동시에 도착했다. 박 상무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서울의 입을 막아야 한다. 국장 호출은 곧 상경을 의미했고, 상경은 오늘 밤의 쾌락은 물론이고 내년 미국 연수의 꿈도 날아간다는 뜻이다.

그는 눈앞의 유가족들을 훑었다. 누군가 쓰러지거나, 누군가 멱살이라도 잡아주길 바랐다. 평온한 슬픔은 기사가 되지 않는다. 피가 튀거나 거품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오늘 밤 서진 오피에 가고, 내년에 미국으로 튄다.

“데이터 더럽게 안 터지네. 야. 인턴. 테더링 켜.”

형석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박 상무가 보내준 오피 아가씨 프로필 사진 로딩이 98%에서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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