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Ship)와 배(Belly)

by 이선우

“멍청아! 쓰지 마! 멈춰!”

김형석이 미진의 노트북 덮개를 거칠게 닫아버렸다.

“아, 왜요! 지금 그림 되잖아요!”

“야, 짬밥을 콧구멍으로 먹었어? 이거 그냥 기사로 쏘면 타사들이 보고 바로 우라까이 칠꺼 아냐! 그럼 우린 그냥 ‘사진 제공’이나 하고 끝나는 거라고!”

형석의 눈빛이 사냥꾼처럼 번뜩였다. 그는 이 상황에서 ‘사진’이 아니라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인터뷰야. 인터뷰를 따야 해. 저 사람이 왜 벗었는지, 아들이 죽어서 미친 건지, 딸이 죽어서 미친 건지, 정부가 미워서 벗은 건지, 그 ‘사연’을 우리가 독점해야 한다고! 그래야 타사들 우라까이 못 치고, 방송사도 우리 걸 인용 보도한다고!”

형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박 선배! 길 터요! 최 기자, 녹음기 켜고 따라와! 인턴, 너는 쟤네(타사 기자) 못 오게 몸으로 막아! 저 사람, 우리가 먼저 확보한다!”

“비켜! 비키라고!”

박동훈이 인간 불도저처럼 앞을 막는 사람들을 밀쳐냈다. 타사 후배 사진기자가 “아, 박 선배! 매너 좀 지킵시다!”라고 소리쳤지만, 동훈은 교묘하게 엉덩이로 그를 밀어 넘어뜨렸다.

“어이쿠, 조심해야지! 취재 경쟁하다 다쳐!”

뻔뻔한 멘트와 함께 그는 렌즈가 아닌 몸으로 길을 텄다. 김형석과 최미진이 그 뒤를 따랐다.

알몸의 남자는 경찰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둘러싸여 제압당하기 직전이었다. 남자는 바닥에 엎드린 채 신음하고 있었다.

“배... 배가...”

남자의 쉰 목소리가 형석의 귀에 꽂혔다. 형석의 눈이 커졌다.

‘배? Ship? 침몰한 배를 말하는 건가? 저 사람, 뭔가 알고 있어. 배 안에서 탈출한 생존자? 아니면 목격자?’

형석의 뇌가 욕망으로 회로를 재구성했다. 확증 편향이었다. 듣고 싶은 것만 들렸다.

“들었어? 방금 ‘배’라고 했어! 저 사람 생존자야! 배 안의 상황을 증언하려는 거라고!”

“대박! 팀장님, 저도 들었어요! ‘배가... 터진다’고 했어요! 침몰 원인이 폭발이라는 증거예요!”

최미진이 맞장구를 쳤다. 그녀 역시 팩트보다 ‘단독’이 필요했다. 뇌피셜이 순식간에 팩트로 둔갑했다.

“선생님! 대한일보입니다! 배가 어떻게 됐습니까! 폭발했습니까! 안에 누가 있었습니까!”

형석이 경찰 어깨 너머로 소리쳤다. 질문이 아니라 유도신문이었다. 원하는 대답을 뱉으라는 압박이었다. 최미진은 녹음기를 남자의 입술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풀려 있었고, 입가에는 거품이 묻어 있었다. 그는 형석을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배가... 배가... 고파... 밥줘...”

정적이 흘렀다.

형석의 표정이 굳었다. 최미진의 입이 벌어졌다. 박동훈이 뷰파인더에서 눈을 뗐다.

남자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짜장면... 배고파... 술도 내놔...”

알코올 냄새가 확 풍겼다. 진한 쉰내였다. 경찰이 혀를 차며 남자를 담요로 덮었다.

“아, 기자 양반들. 좀 비키쇼. 이 사람 동네 유명한 주취자요. 전과 15범이라고. 며칠 굶어서 헛소리하는 거니까 신경 끄쇼.”

허무했다.

김형석은 쥐고 있던 볼펜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아, 씨발. 똥 밟았네.”

그는 조금 전까지 ‘선생님’이라 불렀던 남자를 벌레 보듯 쳐다봤다. ‘침몰한 배’의 증언자가 아닌, ‘배가 고픈’ 알코올 중독자는 그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상품성이 없는 폐기물이었다.

최미진은 녹음기를 껐다. 그녀의 얼굴에 짜증이 확 올라왔다.

“아, 뭐야. 냄새만 나고. 내 옷에 닿았어. 미친 거 아냐?”

그녀는 남자의 팔을 잡았던 손을 옷에 벅벅 문질러 닦았다. 방금 전까지 ‘국민의 알 권리’를 외치던 열정은 온데간데없었다.

박동훈은 찍은 사진을 확인하더니 피식 웃었다.

“에이, 그림은 좋았는데. 아깝네. 그냥 개인 소장이나 해야겠다.”

그들은 남자가 경찰차에 실려 가는 것을 쳐다보지도 않고 뒤돌아섰다. 1등으로 달려갔던 그 속도 그대로, 누구보다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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