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ight you belong to me

by 제로진

참 이상하지, 말 통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곳에서 하루 웬종일을 보냈는데도 어느 날은 홀로 외국어를 쓰는 이방인이 된 것만 같아 너무 외로울 때가 있다. 그럴 때, 항상 난 이 노래를 듣는다.


잘 다니던 첫 회사를 그야말로 '미련 반푼어치도 없이' (어림 반푼어치도 없이의 패러디다..) 때려치우고 내가 향한 곳은 캐나다 토론토였다. 대부분의 어학연수생이 그렇듯, 나도 타지에서 작은 소속감에나마 기대고자 어학원이라는 곳에 등록했고 또 지구 반대편에서도 매일같이 눈을 뜨면 어학원으로 향하는 일상이 시작됐다. 세계 곳곳에서 온 10대 후반에서 50대 중후반의 남녀노소가 말도 안 되는(?) 영어로 개떡같이 말하면서도 용케 찰떡같이 알아듣는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되는 신기한 공간이었다. 어학원이란 곳은...


000024.JPG 필름카메라로 찍은 어학원의 로비. 매주 여러 행사들이 열린다.


아무튼 거기서 캐나다 사람을 만났다. 그 친구도 영어를 배우러 온 거였다. 캐나다 사람이 영어를 배우러 토론토 어학원에 등록한다고??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싶었지만 캐나다의 퀘백이나 몬트리올 같은 곳은 불어를 쓰는 '프렌치 캐나다'였고,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불어가 공용어라 영어를 못 하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첫인상부터 강렬했던 그 친구의 이름은 'Lea'(리아) 였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대뜸 내게 한국에서 왔냐고 묻던 그 친구. 그렇다고 했더니 본인 페이스북 프로필을 보여줬는데, 고향 란에 심지어 한국어로 떡하니 '대구'라고 적혀있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 친구가 방탄소년단 팬이고 방탄소년단 멤버 중 본인이 가장 애정하는 멤버가 대구 출신이라 본인의 가상 고향(?)을 대구로 설정해놓은 것이었다. How cute! 뭐 이런 감탄사를 내뱉었던 기억이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 친구와 나는 코리아타운 골목의 노래방이며 닭갈비집들을 함께 쏘다녔다. 나조차도 모르는 한국 아이돌의 노래를 한국어로 유창하게 부르던 리아. 리아는 토론토의 고모네 집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저녁은 그 집에 정식으로 초대되어 떨리는 마음을 안고(정확히는 근처 CD샵에서 산 방탄소년단의 신보와 이름 모를 와인 한 병을 안고)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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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 가득 풍기던 버터향과 갓 구운 빵 냄새, 그리고 접시 가득 담겨 있던 커다란 카라멜 푸딩 같은 케익과 초콜릿... 아니, 접시는 또 왜 이렇게 다 예쁜 건지. 그야말로 향기에 취하고 맛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했던 저녁이었다. 그리고 친구는 방에서 우쿨렐레 하나를 가지고 나와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 줬다. 그 노래가 바로 'Tonight you belong to me' 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fOjVjc5vJ6I


000014.JPG 우쿨렐레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던 리아와 대만인, 한국인 언니


친구가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던 그 노래가 왜 그렇게나 내 맘을 흔들어 놓았을까?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타지에 와서 조금은 힘들고 외로웠던 나를, 익숙한 노랫말로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만난지 채 반년도 되지 않은 친구들과, 오늘 밤 처음 만난 친구의 고모와 내가, 마치 한 가족이 된 것만 같았다.


삶의 어떤 순간에는 '지금만큼 아름다운 광경을 볼 일이 흔치 않겠다'라는 직감 같은 것이 내려앉는데, 저 날 저녁, 친구의 노래를 듣는 그 순간이 그랬다. 가져갔던 필름카메라로 꾹 그 순간을 눌러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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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전통 음식과 문화를 소상하게 설명해주시던 친구의 고모. 직접 만들어 주셨던 카라멜 케이크가 정말 맛있었는데, 레시피를 물어볼 걸 그랬지.


000008.JPG 그 날 옥상에 올라가 함께 바라보았던 CN타워와 토론토 시내의 야경


토론토의 어학원에서 내가 가장 많이 배웠던 건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마음을 주고 받는 데에 언어는 썩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같은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마음가짐, 내가 좀 어리숙해도 당신은 그런 나를 이해해 줄 거라는 믿음. 그래, 논리적인 육하원칙이나 탄탄한 문법보다 더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tonight you belong to me' 한 소절. 그런 것들이 어쩌면 관계의 본질을 이루는구나, 나와 너를 우리로 엮곤 하는구나.


참 이상하지, 말 통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곳에서 하루 웬종일을 보냈는데도 어느 날은 홀로 외국어를 쓰는 이방인이 된 것만 같아 너무 외로울 때가 있다. 그럴 때, 항상 난 이 노래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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