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인들 사이에서 소문난 맥시멀리스트다.
나도 나를 그렇게 정의한다.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한' 맥시멀리스트인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내 방이 그렇게 어떤 것들로 빼곡한 것 치고는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수많은 물건들 중에 현재나 현실을 위한 것들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런지도.
최근 내 방 한 구석에 자리한 새로운 친구 하나가 있다.
바로 천체망원경이다.
길쭉하고 커다랗고 꺼먼 경통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몸통에 비해 다리는 머쓱할 정도로 가늘고 여린 그런 모습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도 있다는 걸 알기 위해서.
단지 내가 바라보지 못했을 뿐, 머리 위와 발 밑에서 쉼없이 까맣게 까맣게 번져가는 어둠이 있고, 그 안에서 자연스레 빛을 내는 별들이 있다는 걸 알기 위해서.
내가 모르는 것 중에는 '이 삶만이 나의 전부는 아님'과 '나는 어떻든 혼자가 아님'이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
충동적 소비에 조금 그럴듯한 의미부여를 해 보자면 그렇다. 나는 그래서 천체망원경을 샀던 것 같다.
별과 우주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한 나인데도, 어떻게 설계되었는지조차 모를 이 요상스런 천체망원경 앞에서도 어색하다기 보단 그냥 설레기만 했다. 실로 오랜만에 내딛는 새로운 세계로의 발걸음이랄까.
날이 좋은 밤에는 불을 다 꺼놓고 침대 위에 천체망원경을 세팅한다. 서울 끝자락에 사는 덕에 도시 안에서도 별이 꽤 잘 보인다. 겨울철에는 오리온자리가 아주 일품이다!
그렇게 조준한 천체망원경으로 마주한 것들 중 가장 놀랐던 건 토성이었다. 정말 저렇게 고리가 있었다니. 저 모습을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거였다니!
내가 평생을 그저 하늘 위 점 하나로만 보아왔던 토성이 이렇게나 입체적인 존재였음을 알게 된 그 순간의 놀라움, 아니 놀라움을 넘은 황당함이란.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채 알아차리지 못하고 스쳐보냈던 수많은 삶의 모습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세상에 발 딛고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내가 가진 고통이 이 세상의 전부인 것만 같고 내 앞에 닥친 일들 외에 다른 곳으로는 눈길조차 줄 여유가 없을 때가 부지기수다. 언젠가부터 참 여유라곤 하나 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이건 뭐랄까, 몰입이라는 멋진 말로 표현하기엔 소위 말해 너무 '짜치고', 집중이라기엔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럴 땐 토성만큼이나 거대한 행성을 눈 앞에 들이댄대도 시선 한 번 줄 여유도 없을 만큼 나는 오직 나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혼자 우주를 짊어멘 듯 괴롭다. 그래, 괴롭다!
그럴 때마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 사진을 떠올려보려 노력한다. 내 어깨를 짓누르는 건 그저 이 광활한 우주의 티끌만큼의 무거움일 뿐이며, 내가 바라보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토성은 지구와 함께 태양 곁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도. 그저 점 하나처럼 보이는 저 수많은 별들에도 얼마나 다양한 모양이 있고, 역사가 있으며, 그 '있음' 하나로 얼마나 완전해지는지를.
최근에 읽은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 속 한 구절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나는 중학교 일학년 때 선물로 받은 지질시대 구분표를 벽에 붙여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려가길 좋아했었다. 나중에는 당시 살았던 생물들의 이름을 시대별로 차례대로 외웠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쯤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는 분명 존재했던 것들의 이름이 소중하게 느껴져서였다.
나는 기도문 외우듯이 그것들의 이름을 나열할 수 있었다. 턱이 있는 어류, 폐어, 육지 달팽이, 해백합, 파충류 같은 포유류, 소철류, 시조새, 원시 현화식물, 그 이름들을 속으로 외울 때면 바깥 세계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고, 내 안의 생각과 느낌들이 무뎌졌으며, 나라는 존재가 조금은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어디에서든, 어느시간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슬플 때, 불안할 때, 화가 날 때, 누군가가 내 마음을 쥐고 흔들 때, 나는 그 이름들을 그저 간절하게 불렀고, 그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현실의 고통에서 나를 분리시켜줬다. '원시지구'로 시작해서 '여러 종류의 발굽이 있는 동물'까지 중얼거리고 나면,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부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의 이름을 불러준 것 같았다. 그럴 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천체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볼 때마다 나는 좀 더 희미해지고, 현실은 밤하늘보다 조금 더 어두워진다.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오직 까만 밤하늘만 조준하고 있는 까만 경통의 어깻죽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하는 일들이 모두 이렇게 현실을 외면하는 일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별을 헤아리고 싶다. 내가 바라보지 못했을 뿐, 별처럼 내 주변을 가득 채운 낯선 것들, 아직 가닿지 못한 곳들, 나를 웃게 할 것들이 가득함을,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