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와서 책을 읽다가 울었다.
대개 나를 속절없이 울게 만드는 책은 가족에 대한 것이거나 이젠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유년 시절 해질녘 골목길의 추억이거나인데 이제 완벽하게 대성통곡을 하려면 그 골목길 위에 따스한 미소를 띤 나의 가족이 무더기로 서 있으면 된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도입부는 유난히 그런 골목길 위 가족 무더기 같은 뉘앙스였고 나는 그야말로 질질 짜면서 괜시리 문학을 보며 가슴앓이하고 종국엔 눈물까지 흩뿌리는 그런 내가 왜인지 또 그 에세이의 작가만큼이나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소위말해 예술적으로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또 평생을 이 형용 못 할 우울로부터 지배 당할 운명의 삶을 살게 되는것은 아닐지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견딜만큼만) 비극적인 나의 삶이 어쩌면 남들보다 한 몇센치 깊은 사고를 하기에는 너무나도 적합한 모양새를 하지 않았나 하며 충만함마저 느꼈는데...
그런 나에 취한 채로 내 아는 동생 유진이에게 '책이 너무 슬퍼서 읽으면서 광광 욺ㅠ' 이라고 했다. 새삼 우습다. 책이 슬프면 슬픈거고 그래서 읽다 울면 우는거지 왜 이런 걸 사사건건 또 공유하고 싶을까? 인간은 어쩌면 그 울음의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우는가? (눈물셀카를 비웃던 사람들의 휘어진 입꼬리는 아마 그 이미지에서 심연 깊은 곳의 자신을 발견해 반가운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자 45도 각도로 살짝 돌린 고개를 닮아있을 것이다) 어쩌면 눈물 또한 공유경제의 일환일런지도...
아무튼 그래, 지인이 책을 읽다가 울었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에 대부분 하는 반응들이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헐 진짜ㅠ 울지마...' 라든가 '많이 슬퍼?'와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유진이는...
'왜..'
'상상했는데'
'존웃긴다'
라고 했다. 이 답을 보는 순간 그야말로 딱 산통이 깨지면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그러게 나라도 내가 방 구석에 앉아 폐인 몰골로 종이를 붙들고 엉엉 우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야말로 존웃긴다. 방금전까지 이 모습에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느꼈던 것이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공감을 원하고... 물론 나도 공감을 원한다. 하지만 때로는 정말 뜨악한 반응들에 마음이 동한다. 슬픈 소식을 전해오는 누군가를 바로 폭소하게 만들 만큼의 어이없는 리액션을 시도해 보고 싶다.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누군가의 뺨을 손으로 감싸고 그 눈두덩이에 입을 맞추며 앙드레김 패션쇼 엔딩 같은 이마 키스를 이어가보고 싶다. 내 머리도 굳어서 더 신박한 상상을 당장 떠올리지는 못하겠다만, 어쨌든 A 다음에 B가 나오는 그런 예상 가능한 사회적 소통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는 대화들을 밤새도록 해보고 싶다. 누가 들으면 맛이 갔나 싶을 정도로 어이없는 동문서답과 자다 봉창두드리는 소리로 차분하고 고요한 호수를 뒤흔들고 싶다. 왜 이렇게 재밌는 것이 좋을까? 왜 나이를 먹어가도, 아니 먹어갈수록 계속 사회 통념을 살짝 비틀어대는 행위에 마음이 끌리는 걸까?
난 좀 더 우스꽝스러워지고 싶다. 근데 난 진지하고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들을 사랑하나 보다. 그런 것들을 더 웃게 만들고 싶은 걸 보면. 사랑하면 웃게 만들고 싶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