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르지 않아

by 제로진

살다보니 참으로 안타깝게도 상처 준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상처 준 사람들. 나 아닌 남들을 보면서는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저 사람은 아주 못 돼 먹은 인간이고 어제까지만 해도 선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아니었던 바로 저 사람의 이 행동은 아주 나쁜 행동이다.' 하고 판단을 내리기가 참... 쉽지는 않아도 참 자주 그렇게 하며 살아왔던 것 같은데 정작 나 자신을 옳고 그름의 잣대 앞에 손 잡고 끌어다 세운 적은 몇 번이나 있었을까? 부끄럽지만 자주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언제나 내 행동의 이유를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를 이렇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십수년전 그 때 그 상실의 기억과 또 더 십수년전 유년시절의 트라우마 같은 것들. 그래 나는 나를 위한 변명거리를 꽤나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늘 내 변명거리가 너무 위중했으며 해결하기에 급박했기 때문에 늘 후순위로 밀려났던 사람들. 그렇게 내가 상처 주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을 가끔 떠올리게 되는 날이 있다. 우연히 발견한 상대방의 SNS 계정이나... 사이 좋았던 시절 주고받았던 편지나, 앨범 속 환히 웃고 있는 같이 찍었던 사진이나, 걔 그렇게 지낸다더라 하는 동창의 이야기나... 뭐 그런 것들로.


그리고 그 당시에 내가 저질렀던 치기어린 실수라든가 어리석었던 자존심 내세우기라든가 오해임을 알면서도 괜히 찬바람 불 정도로 쌩하니 돌아서서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던 나의 정없음을 떠올렸다. 그렇게 문득 영영 틀어져버리기 시작했던 그 시점 어귀를 돌아보고 있자니 '아, 나 진짜 어렸다' 싶더라. 하지만 지금 당장, 또 다시 그 때와 똑같은 상황에 직면한다면 난 더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양보하고, 그깟 자존심! 하면서 먼저 다가가 손을 잡고, 나 자신에게 그렇듯 상대에 관대할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아닐 것 같다. 나는 아무리 어른이 되어도 결국엔 뼛속까지 나인 것이다. 좋을 때는 그 때처럼 좋겠지만, 틀어지기 시작하는 관계 위에서는 또 한없이 유치하고 끝없이 어리게 굴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변한 것 하나 없는 나를 인정하고 나니, 이거야말로 상대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될 일이자 나의 죗값이 아닌가? 싶다. 상처받은 상대로서는 과거의 인간에게서 "그 날 이후로 나 완전 달라졌어. 너와의 관계로부터 많이 배워서 난 새 사람이 됐어." 같은 멋진 말을 듣는 것보다 "난 그 실수를 해 놓고도 그대로 똥멍청이임. 그리고 똑같은 실수를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또 반복할거다! 하하하!(코를 후빈다)" 라는 말을 듣는 것이 훨씬 기분 좋지 않은가.


소중한 사람을 한낱 알량한 자존심과 철없음으로 떠나보내는 것만큼 어리석은 실수가 또 있을까? 그리고 무시무시하게도 그 실수라는 것이 그저 과거의 추억에 그치지 않고 삶의 어느 선상에서 또 반복되고야 말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뒷통수를 저릿하게 스쳐지나가는것만큼 구린 기분이 있을까? 하지만 이 기분을 내가 상처주었던 과거의 사람들을 위해 오롯이 느껴야 할 것만 같다. 내가 이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그 사람들이 알아준다면 더할나위 없는 그들의 승리가 되겠지만... 전할 수 없네. 그렇게 됐다. 난 상실로부터도 별 달라지지 않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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