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커피의 진실

블랙커피, 위안이었을까.

by 서로봄

커피는 내게 언제나 검고 깊은 쓴맛이었다. 그 쓴맛은 마치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기상나팔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입안에 퍼져든다.


구수한 향이 코끝을 스치고, 단맛 뒤에 감춰진 쓴맛은 서서히 뒷맛으로 남는다. 아무것도 아닌 듯,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나는 늘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누군가 원두의 산지나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의 차이를 떠들어댈 때면 나는 대체로 묵묵히 듣기만 했다. 딱히 커피가 그렇게 논할 만큼의 특별한 음료일 필요는 없었다. 내가 마시는 커피는 그저 아침을 깨우는 작은 의식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 향을 즐기기보다는, 아침을 맞이하는 자동적인 행동처럼, 일상 속에서 익숙하게 반복되었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커피의 향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때 따스하고 구수했던 그 내음은 이제 무감각 속에 묻혀버렸다.


쓴맛과 단맛이 뒤섞인 커피는 더 이상 내 입맛을 자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찻숟가락을 달그락거리며, 그저 그냥 마신다.


가끔은 ‘다른 차를 마셔볼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건강에 좋다는 허브차나 녹차 같은 것들. 하지만 그 생각은 늘 머릿속을 떠도는 구름처럼 지나가버린다. 몇 해가 지나도, 나는 여전히 그것은 생각에만 머물렀다.


정량화된 믹스 커피가 등장하기 전, 나는 어머니와 함께 커피를 마시곤 했다. 커피 두 스푼, 설탕 두 스푼, 프림 세 스푼. 그 작은 공식 앞에서, 물의 양은 언제나 맛의 중요한 변수였다.


하지만 그날, 어머니는 내 손을 멈추게 했다.

"나는 설탕도 프림도 빼고, 커피만 줘."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보았다. 살짝 미소를 머금고 계시던 어머니의 표정은 평온하고도 담담했다.


그때, 부엌 창문으로 들어오던 밝은 햇살이 어머니의 이마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내 시선을 의식한 듯 "나는 개운한 게 좋아."라고 덧붙여 말씀하셨다. 그 짧은 한 마디는, 쓴 맛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설탕의 달콤함을 밀어낸 그 단호함이 의아했다.


언제나 달콤하고 부드러운 커피를 좋아할 거라고 믿었던 어머니가 블랙커피를 마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도 어머니는 계속 블랙커피만 마셨다.


그 커피를 마시며 어머니는 "담백하고 깔끔하다."며 찻잔을 들고 천천히 음미하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머니의 얼굴에 햇살 같은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나는 달짝지근한 커피를 마시며 어머니와 함께한 그 순간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머니와 나누던 커피 한 잔은 어느새 흐릿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그 장면은 이제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희미하고, 어머니의 얼굴조차 가끔은 안갯속에서 보듯 흐릿하다.


때때로 그리움은 커피 향에 뒤섞여 찾아왔다. 그럴 때면 어머니의 산소로 향했다. 그리곤 블랙커피 한 잔을 상석에 올렸다. 더 이상 "개운하다."라고 말씀하실 수 없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공원묘지의 쓸쓸한 바람에 묻어나던 커피 향은 당신의 부재를 더욱 생각나게 했다.


식어버린 그 커피는 이제 액체라기보다 어떤 딱딱한 고립처럼 느껴졌다. 잔 바닥에 남은 검은 테두리는 어머니가 끝내 말하지 못한 침묵이었다. 이제 남은 건 어머니의 말, 그날의 빛, 그리고 흐려진 얼굴뿐이다.


어머니는 정말 블랙커피를 좋아하셨을까. 그 짙은 쓴맛이 과연 어머니에게 위안이 되었을까.


매운 삶을 무던하게 우려낸 이에게 그 쓴맛은 진정 위로였을까. 한순간에 무너진 집안을 지탱하며 스스로 삼켜야 했던 한 모금의 위로였을까.


그때, 어머니의 얼굴에 보였던 담담한 표정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고통이 담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쓴 커피가, 어머니에게 필요한 소소한 위로였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이제 너나없이 얼음을 가득 채운 블랙커피를 들고 거리를 활보한다. 그 가벼운 검은 물들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설탕과 프림의 농도를 조절하며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개운함의 입구에서 서성거린다. 어머니가 마시던 그 쓴맛은 이제 내게는 닿을 수 없는, 오래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낡은 사진 속 희미한 어머니의 얼굴처럼, 멀고도 흐릿하게.








.



















*어머니는 어떤 존재일까요?


작가의 이전글가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