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남겨진것은 무엇일까.
바람이 큰 밤나무 숲을 돌아 작은 휘파람 소리를 내며 길을 내고 있었다.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며 산비탈 옆구리를 돌아가는 계곡의 고즈넉한 물소리는 한없이 다정하였다. 근처 농가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던 닭 울음소리는 시공간을 무감각하게 했는데 아직도 그대로인지 궁금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침상에 누우면 때때로 그곳이 파노라마처럼 느린 동작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코로나로 세상이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 어지러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고향 선산에 보내 달라시던 평소 아버지의 바람을 따르기로 했다. 현재 살고 있는 곳과는 너무 멀지만 이미 마련되어 있던 가족 납골당에 부모님을 함께 모시기로 했다.
당신이 살아오신 시간을 되돌아볼 사이도 없이 황망한 가운데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삼십여 년 살고 계시던 어머니의 집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분향소에 갇혀 조문객을 받는 동안에 전화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이장(移葬)을 담당한 일꾼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어머니를 ‘예를 다하여 모셨습니다.’로 시작하는 메시지와 함께 갈무리한 사진을 같이 보내왔다. 파헤쳐진 휑한 구덩이 한쪽에 정갈하게 수습된 사진 속의 어머니는 너무 낯설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머니를 바람 한 줄기에도 바스러질 것 같은 느낌의 마른 뼈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날이 다시금 어제 일처럼 되살아났다. 그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순간이었다. 그해 봄, 밤꽃향은 온 산을 어지럽히며 떠다녔다. 산봉우리 하나를 다 채우고 있던 공원묘지 한곳에 조그만 구덩이 하나가 더 생겼다. 평생의 고단함을 끝내고 돌아가는 어머니의 가없는 육신이 거처할 집이었다. 그 구덩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무한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어머니를 묻고 돌아올 때 그곳에 내 마음의 한자락도 같이 묻혀버렸음을 알았다. 표현할 길 없는 복잡한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저 구덩이에서 어떻게 나올까.
‘산 사람은 어떻게도 산다.’라는 어른들의 말씀처럼 그냥저냥 살아졌다. 그리움도 안타까움도 말간 얼굴 뒤로 숨기고 후회는 더욱 깊이 감추고. 그런데 내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것은 가신 분에 대한 가여움이었다. 그것은 때때로 가슴을 파랗게 멍들이곤 했다.
아버지의 삼일장이 끝나던 날, 그렇게 수습한 부모님의 유골함을 모시고 선산으로 갔다. 잔설이 희끗희끗 남아 질척이는 산비탈을 오를 때 자꾸만 미끄러졌다. 떠나온 고향은 이미 뿌리를 다른 곳에 내려버린, 오랜 타지 생활로 인해 반가움이나 따뜻함 따위는 실종되고 없었다. 인적 드문 좁은 산길을 따라 휘청휘청 걸어 올라 산 중턱 납골당에 두 분을 모셨다. 돌아올 때 낯선 동네 초입 어디쯤에서 억지로 먹었던 밥은 이미 식어 모래알처럼 버석거렸다.
그러고도 꼭 삼 년이 지나갔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어느 날 불현듯 그곳이 궁금했다. 삼십여 년을 어머니의 집으로 자리하고 있던 곳이었다. 밤꽃 흐드러지던 날 그 텁텁한 꽃 향 사이사이로 가눌 수 없던 상실의 슬픔이 자리하였던 곳. 마음이 헛헛해지는 휴일이면 한 다발의 꽃을 안고 그곳을 찾았었다.
시외버스 주차장으로 가면 공원묘지 행 버스가 하루 두 번 정확한 시간에 출발하였다 돌아오곤 했다. 어떤 날은 텅 빈 버스에 오롯이 나 혼자였던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괜스레 눈물이 비집고 나오려고 했다. 애써 차창 밖으로 눈길을 두고 스쳐 지나는 풍경속으로 마음을 들여보냈다.
어느 해인가 가눌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찾았던 날, 기적처럼 봉분 뒤 한 귀퉁이에 개똥참외가 열려 있었다. 그 참외를 바라보며 타박네의 노래를 떠올렸다. 노랗게 고운 빛깔이 더욱 서러워 눈물마저 노랗게 물든듯한 날이었다. 그렇게 눈물바람을 뿌리고 그곳을 다녀오면 심란하게 흔들리던 마음이 잠시 자리를 잡고 또 한동안은 살아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을 찾는 빈도는 틈을 벌려갔다.
강산이 세 번 변해갈 시간을 그렇게 찾아갔던 곳이었다. 그곳에는 어머니께 고했던 내 삶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사방에 흩어져 뿌리를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곳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음을 알았다.
목울대를 넘어서지 못하던 갇힌 슬픔도 이젠 희미해졌다. 각자 자기 몫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인생길에 남은 날이 무한정이지 않음을 알게 되었음이다.
그곳에 다시 봄이 오면 밤꽃이 호들갑스레 필 테고 여름이면 우렁찬 계곡 물소리가 쉼 없이 제 길을 찾아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닭 울음소리는 시도 때도 없이 묘원을 메아리치겠지. 어쩌면 어머니가 떠나신 빈자리는 이미 다른 이의 집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아마도 나는 다시는 그곳을 찾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가끔은 그곳의 밤나무 숲을 돌아 나가는 바람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