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의 커다란 눈은 깊은 동굴 같았다.
세상에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곳 또한 그러했다. 기억 속에서 늘 눅눅하게 남아 있는 곳. 그곳을 생각 속에서 끄집어내면 언제나 한 아이의 커다란 눈이 떠올랐다.
해마다 장마가 시작되면 비밀을 숨길 새도 없이 속사정을 드러내는 곳이 있었다. 지대가 낮은 곳에 있던 몇 채의 집들이었다. 그 집들은 어김없이 물에 잠겼다. 해가 쨍한 날이면 젖은 세간살이들이 하나둘 집 밖 거리로 밀려 나왔다. 장롱이며 밥상, 부엌의 자잘한 그릇들까지 길 위에 널브러졌다.
물에 젖은 장롱은 속을 다 비워내고 집보다 높은 도로 위로 내몰렸다. 천천히 몸을 말리며 멋쩍은 얼굴로 한동안 서 있었다.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들은 의도치 않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요깃거리가 되었다.
다행히 우리 집은 지대가 높은 곳이었다. 내려다보는 광경은 안쓰럽기도 했고, 어쩐지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나는 해마다 되풀이되던 그 광경을 보며, 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것을 은근한 구경거리처럼 바라보곤 했다.
그 집들 중 한집이었다. 주인은 J중령이라 불리던 중년 남자였다. 그 무렵 그는 민간인이었고 집에서는 그 어떤 명령도 내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말수가 적고 얌전했으며, 곱상한 얼굴로 늘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다녔다. 반면 그의 아내는 체구가 크고 목소리가 우렁찼다. 한 번 성이 나면 집 안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드셌다.
그 집에는 딸들이 여럿 있었다. 그 아래에 터울이 많이 지는 유난히 작고 어린 남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S였다.
S가 J중령이 밖에서 데려온 혼외자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 온순했고 아내의 등쌀에 감히 딴짓을 할 수 없으리라는 믿음이 속절없이 깨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S는 집 안에서도, 동네에서도 늘 한 발 비켜서 있어야 하는 아이였다.
S는 제대로 먹지 못해 또래보다 몹시 작고 허약했다. 밥때가 되면 가족들이 둘러앉은 상에 그 애는 끼지 못했다.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인 밥그릇에 밥은 조금 담겼고, 찬은 간장 종지 하나가 전부였다. 상도 없는 구석에서 누가 빼앗아 갈까 봐 그 애는 그릇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 고개를 숙인 채 먹었다. 밥은 언제나 모자랐다. 늘 배가 고팠는지, 눈이 유난히 커 보였다. 그 눈은 항상 무엇인가를 살피듯 불안하게 흔들렸다.
J중령은 그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들을 향한 마음보다 아내의 눈길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어느 날, S는 동네 구멍가게 가판대 옆에 오래 서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주인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빵 하나를 집어 들고 달아났다. 그러나 몇 발짝도 가지 못해 붙잡혔다. 일곱 살짜리 아이가 배가 고파 저지른 일이었다.
가게 주인의 고함이 골목에 울렸고,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S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울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결국 그 아이는 J중령의 아내에게 넘겨졌다. 덩치 큰 그녀에게 가녀린 손목을 붙잡힌 채 끌려가던 아이의 뒷모습은 곧 흩어져버릴 한 조각구름 같았다. 나는 숨을 멈췄다 천천히 다시 들이마셨다.
그날 S는 무자비하게 맞았다. 두들겨 패는 소리는 담장 너머로 고스란히 들려왔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나 역시 담벼락 뒤에서 숨을 죽인 채 서 있었다. 마음속에서는 “그만!”이라는 말이 뛰쳐나오려 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담벼락을 짚고 있던 내 손이 빗물 때문인지 땀 때문인지 축축했다.
그날 이후로도 여름이 오면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왔다. 물에 잠긴 집들처럼 사람들의 삶도 드러나고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S의 배고픔과 죽도록 맞아야 했던 기억은 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장마철이 되면 나는 문득 그 아이를 떠올린다. 물에 젖은 길 한가운데 서서, 빵 하나를 움켜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S의 모습. 세상에는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끝내 마르지 않는 여름이 있었음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