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에 물들 때

아버지는 외로움을 모르시는 분인줄 알았다

by 서로봄


내가 사는 아파트 옆 빈터에는 오일장이 선다.

장날이면 나이가 꽤 지긋한 노부부가 작은 좌판을 펼친다.

직접 가꾼 텃밭에서 수확한 농작물 몇 가지를 바구니에 담아 소박하게 내어놓는다.

그 손길이 정성스럽고 세심하다.


그분들을 보면 백년해로란, 어쩌면 실바람 한 줄기가 태산을 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 다른 생각과 습관을 가진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는 것.

그 길에는 수많은 충돌과 화해, 인내와 양보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 노부부를 가끔 마주칠 때면 서로 챙기고 배려하는 모습에서 그 시간을 두께를 가늠하게 한다.


요즘은 호박잎이 제철이다. 초록 치마처럼 곱게 접힌 잎들은

거칠던 줄기가 말끔히 벗겨져,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바구니에 정갈하게 담겨 있다.

잎의 크기와 수량이 고르게 맞춰져 있는 것을 보면, 두 분이 얼마나 정성껏 준비했는지 알 수 있다.


며칠 전, 그분들에게서 호박잎을 사 왔다.

냄비에 찜걸이를 올리고 살짝 쪄낸 호박잎은 숨을 죽인 부드러움으로 먹음직스러웠다.

냄비 바닥에는 호박이파리에서 빠져나온 초록물이 고운빛으로 고여 있었다. 마치 여름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했다

다진 논고동을 넣고 자박하게 끓인 강된장과 함께한 한 끼는

소박하지만 정겨운 여름 밥상이 되었다.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말수가 적고 빈틈없던 분.

근엄함으로 무장한 그 시대의 아버지.

그 깊은 속에 사랑이 얼마나 숨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무심한 말투와 표정은 늘 내게 섭섭하게 다가왔다.


한 번은 참다못해 물었던 적이 있다.

왜 이렇게 자식에게 무관심하고 무뚝뚝하시냐고, 사랑하기는 하시냐고.

그때 잠깐 당황하신 듯 생각에 잠겼다 조용히 말씀하셨다.

“범이 지 새끼 잡아먹는 거 봤어?”

물론 본 적 없다.

그 말이 아버지만의 사랑 표현 방식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어머니는 내가 스물일곱이던 해, 쉰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직 출가 전이었던 나는 갑작스레 어머니의 부엌을 물려받았다.

일터에서 돌아오면 숨 돌릴 틈도 없이 가족들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전업주부가 된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 시절의 '오늘은 뭘 해 먹을까'라는 고민은 주부도 아닌 내게 유난히 버겁게 느껴졌다.


그날도 지친 마음으로 귀가하던 길, 노점에서 호박잎을 샀다.

찜솥에 살짝 쪄서 저녁상에 올렸더니

아버지는 유난히 맛있게 드셨다.

그제야 알았다.

아버지가 호박잎쌈을 참 좋아하신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을 것이다.

내가 하얀 밥 위에 초록 물이 드는 게 싫다고 투정을 부려도,

밥을 뜸 들일 때면 자꾸만 호박잎을 얹으시던 어머니.

그건 아버지를 위한 사랑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야 알았다.


어머니가 떠난 뒤, 아버지는 삼십여 년 가까운 세월을 혼자 사셨다.

오일장의 다정한 노부부를 보며 생각해 본다.

홀로 남은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쓸쓸했을지, 어머니의 빈자리가 얼마나 컸을지를.


그 시절의 나는 아버지에 대한 공경보다는,

힘겹게 부엌을 지켜야 하는 현실에 지쳐 있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그때 원하셨던 건 단지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줄, 가족의 따뜻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때가 아버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 감정에만 갇혀 있었다.


호박잎은 아버지를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음식 중 하나다.

그것은 나와 아버지를 잇는 기억의 다리이자,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건져 올린 한 조각이다.

그 기억의 다리 위에는 아버지와 나,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그날이 머물러 있다.


내일이면 다시 장날이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나는 그 다정한 노부부의 좌판에서 깔끔하게 단장한 호박잎을 사야겠다.

그리고 찜솥에 살짝 쪄서,

초록빛으로 물드는 그리움과 아쉬움을

꽁꽁 싸서, 보고픔과 함께 삼켜야겠다.

근엄 때문에 더욱 쓸쓸했을 아버지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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