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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Mar 31. 2024

바람은 울부짖으나 산은 고요할 뿐.

그래, 이젠 마음껏 실수해도 괜찮아.

휴일오후, 오랜만에 뒷동산을 향했다. 그사이에 나도 모르는 등산길이 열렸다. 훨씬 더 멀리, 더 예쁘고 아기자기한 '둘레길'로 변신해 있었다. 평상시와는 다르게 반대편 능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유로이 유영하듯 내딛는 걸음마다 뜻 모를 설렘과 기대감이 함께 피워 오른다. 하며 걷던 무수한 걸음과는  다른 느낌이다. 경쾌함과 여유로움이 한껏 묻어난다. 홀로 들어섰지만 둘레길 위로 쏟아지는 무수한 속삭임들라 산속 이곳저곳으로 흘러 나는 가장 평온한 존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지막한 산 정상에서의 짧은 휴식을 뒤로 한채 하산하다가 반대편 길로 잘못 들어섰음을 직감했다. 날카로운 내면의 질책이 고개를 드는 순간 서둘 나는 괜찮다고 선언했다.

  

이젠 실수해괜찮아.

그래, 이젠 마음껏 즐겨도 되는 상황이쟎아.


우리는 늘 실수하면 안 되는 삶을 살아왔다. 실수 뒤에는 불안과 강박감이 닥쳐오고 심한 자책이 여지없이 생겨났다.


중년의 남자들은 가족을 늘 불안하게 한다. 남들 앞에서 딱 부러지는 소리를 서슴없이 잘하고 빈틈없이 처신하는 지인도 오십 줄에 들어서니 딸에게 아빠는 직장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푸념을 들어야만 했다.


가족들을 불안하게 하는 중년남자들의 이런 부실하고 연약한 실상은 가족에게 무장해제된 민낯 사회적으로 무장해제 당한 후유증 때문일 거라며  애써 위로해 본다.


 늘 불안해하며 살아온 걸까.


타인은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대상이다. 세상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달콤한 초콜릿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결국은 그에 대한 비난과 비방을 하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그럴듯하면서 확인할 수 없고 매우 가혹한 인간 문화의 한 단면이다.

조지프 엡스타인은 이런 '가십(Gossip) 문화'를 '성난 초콜릿'이라고 표현하며 그 해약을 말한다.


가십의 또 별명은 '지적으로 껌 씹기'이다.

사람은 두 세 사람만 모여도 누군가에 대해 말한다. 그에 대한 신상전반에 대해 장단점을 나누며 친근한 껌 씹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자연스레 이런 문화 속에선 코끼리 가죽같이 튼튼한 피부를 지닌 사람들만이 살아남기 쉬운 그런 곳이 되어버렸다.


피부전도율 시험에서 반응성이 낮을수록 땀이 덜나고 피부가 차갑다. 사람들은 외부자극의 영향을 덜 받는 경우 ''하다고 표현한다.


이런 외부자극에 덜 민감한 '저 반응성'과 관련되는 '적은 심장박동수'는 신분의 상승을 상다. 심장박동이 쿨할수록 동료의 경탄의 대상인 능력이 된다.


최근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서 2007년 이후 두 번째로 5개국(한국, 중국, 일본, 미국, 독일) 국민을 대상으로 15개 직업군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한국이 직업적 차별의식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회기여도가 높고 직업안정성이 높아도 육체노동의 강도가 높고 보상 수준(급여)이 낮으면 직업이 지닌 위세도 낮다고 평가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가장 낮으면서 타인을 향한 직업적 편견이 가장 높다는 사실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외부자극의 강도가 가장 높으며, 외부자극에 약한 사람들은 그만큼 더 힘겹게 살아갈 수밖에 없 환경이라는 의미한다.


한국처럼 유달리 편견이 심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코끼리 가죽처럼 튼튼한 피부를 지녀야 했다. 어느 누구도 무시 못할 강안(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사람들은 저마다 발버둥 치며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2002년부터 7년간 <문화일보>에 연재된 화제소설 <강안남자>의 삽화를 그린 웹툰작가 김 나 씨가 2015년 4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본명이 장하경이던 그녀는 당시 42세로 17년간 몽환적이고 모던한 그림을 그려왔던 개성적인 웹툰작가였다.

난나아트 화면 갈무리

출판사가 원하는 그림을 납품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텍스트를 해석하고 텍스트와 조화해서 그린 그림은 당연히 자신 고유의 작품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실력을 인정받은 작가였지만 밥벌이를 유지할 정도도 안 되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꼈다. 결국 전업작가로서 한계를 느끼고 생계를 위해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수료했던 그녀는 논술학원에서 2년간 국어를 가르쳐야 했다.


이 편지가 네게 갔을 때는 방황이 끝나 있을 거야.


글을 쓰는 작가, 화가도 아닌 삽화작가는 한국에서 능력을 인정받아도 좋은 대우를 기대할 수는 없었던 그녀는 스스로 생의 방황을 마감했다.


그녀의 친구들은 가족과 함께 모인 삼우제에서 진실된 그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를 기억하는 지인들의 공통점은 정말 따뜻한 사람이고, 강한 줄 알았는데 여린 사람이었다는 것, 그리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선물하는 걸 굉장히 좋아했는데 받고 보면 상대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한 선물이었다. 사람의 감정의 결을 잘 읽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져 힘들어하는 지인에게 갑자기 집에 찾아와 꽃을 주고 가고, 힘들어할 때는 밥 해주고 기운 내게 하는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그런 그녀가 지인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꿋꿋하게, 끝까지 살아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한겨레 뉴스분석 왜?/박유리기자>


그녀는 피부가 얇은 그런 사람이었다.

매우 섬세해서 주변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 반응성'을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향적이고 숫기가 없다.  그런 성향으로 인해 세상 속에서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심리학자 일레인 애런 Elain Aron박사는 '고 반응성'을 '섬세함(감수성)'이라 다시 불렀다.

내향성과 섬세함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섬세함은 양심과 연결이 다. 가장 섬세하고, 가장 외부의 자극에 반응성이 높고, 가장 내향적인 사람일수록 '죄책감'을 가장 강하게 느끼며 당혹해한다.

  

하지만 숨기고 싶은 당혹감은 가장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감정이다.


겸손함과 겸허를 보여주고 과격한 충돌을 피하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욕망을 보여준다. 당혹감은 어떤 사람이 우리를 서로서로 연결되게 해주는 규칙들에 얼마나 마음을 쓰는지를 드러낸다.


과학자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을 비롯한 여러 종들의 구성원 중 약 20퍼센트는 내향적이고 80퍼센트는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든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일단 돌진하는 유형임을 발견했다. 


매우 섬세한 사람들은 세상이, 모두가 부드럽게 이야기하고 누구도 강압적으로 굴지 않는 세상이 되길 고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주변에 신경 쓰지 않고 돌진해 대는 성향이 대부분인 거친 바람 같은 군중들 틈에서 균형을 바라는 심정으로 위태롭게 서있는 촛불신세와 같다.



아내의 생일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몹시 거칠게 불었다. 요즘 물량이 대폭 줄어들어 배송시간도 덩달아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택배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이리저리 힘들게 했다.

 

상품중 고가물품이 있어 애써서 무인함에 넣어두고 정성스레 사진과 문자를 남겼지만 저녁 늦게 전화해서 상품을 어디에 뒀냐고 되묻는다.

 

배송 동선이나 엘리베이터가 겹쳐지는 경우 고함치고 욕하는 양아치 같은 배송기사가 나타나는 바람에 피부가 얇은 우리는 충돌을 피하려 신경 쓰며 바삐 움직여야 했다.

  

흩날리는 비와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도 일을 일찍 끝낸 후 나는 케이크와 선물을 사서 들어가자고 했지만 아내는 수입이 줄어든 만큼 절약해야 한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우여곡절 끝에 케이크가 있는 저녁 식탁 주위로 둘러앉은 피부가 얇은 우리들은 마냥 행복하고 감사했다. 어린아이처럼 손뼉 치고 축하하며 케이크를 나누었다. 


계단으로 무거운 상품을 전해줬더니 상가고객분이 전해준  온정이 담긴 커피를 아내와 나눠 마셨다.


바람은 울부짖으나 산은 고요할 뿐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부드러운 방식으로 세상을 뒤흔들 수 있다고 했지만 지극히 겸손하고 평범한 우리는 어떠한 거친 바람 속에서도 그저 요동하지 않는 산처럼 꿋꿋하고 담담하게 서있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부드러운 힘이 지닌 강렬함만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


부드러운 힘은 조용한 끈기를 말한다.

우리는 하루하루와, 일대일의 관계에서 상당한 끈기를 보여주며 서로를 향해 다가서며 그렇게 서로의 연약함을 보듬으며 지켜주고 있었다.


아내와 조용히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를 봤다.

주인공 가후쿠가 공연하는 연극'바냐아저씨'에서 소냐가 위로하는 마지막 대사가 오랫동안 가슴속에 먹먹하게 남았다.


어쩌겠어요. 또 살아가는 수밖에요.  

바냐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지금도,

나이 든 후에도 일하도록 해요.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 세상에서 얘기해요. 

우린 고통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의 대사들/소냐>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일 때 우리는 가장 강한 존재로 다시 탄생함을 깨달았다.


숫기 없는 사람은 낯선 이들의 이목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으나 그저 낯섦이 부담스럽고 자신이 없을 뿐이다.

전쟁터의 장군으로 살건지 섬세한 구두수선공으로 살 건지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느리고 천천히 가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경주해야 한다고 느끼지 말자. 

깊이를 즐긴다면 넓이를 추구하려고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자. 

세상을 지배하는 기준에 휩쓸리지 않도록 자신을 방치하지 말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존중하는 것이다. 

<콰이어트/수전 케인>


홀로 천천히 그리고 자유롭게 말이다.


p.s 얇은 피부로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간 '김난나'님과 섬세하고 여린 감성을 지닌 수많은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함께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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