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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삼촌 Dec 03. 2023

12월의 크리스마스 선물.

12월이 되면 늘 설렌다. 오십이 넘어도 우리의 설렘은 여전했다. 휴일아침에 햇살이 드는 거실풍경을 바라보며 아내와 함께 그 설렘을 나눈다.


희뿌옅게 김이 서린 차창은 아련히 추억을 부르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이 따사롭다. 아내는 소파에 누워 나의 무릎 위에서 얕은 잠에 빠졌다. 모든 게 몽롱하고 나른하게 멈추듯 잔잔히 흐르는 이 순간이 참 좋다.


12월이 되무엇을 기대하며 기다리게 되는 걸까.


좋아하는 음악이 높은 천장 구석구석 울려 퍼지고 진한 커피 향 내음이 그 뒤를 따라 기분 좋게 퍼지는 그런 우리만의 카페를 그려본다.


래퍼인 막내아들이 만든 자작 싱잉랩이 일 년 365일간 좋아하는 에바케시디, 라첼야마가타, prep, 아델, 제이크이삭, 노라존스, 그레고리포터 등 과 어울려 흘러나오면 들으면서 행복하겠다.


가끔씩 홀 한가운데 놓인 나지막한 무대에서 아들이 라이브로 공연하고 함께 즐기는 아들의 젊은 벗들을 바라보면서 감사하며 겠다.


카페 한쪽 벽면에는 내가 좋아하는 백 권의 책을 투박한 나무선반 위에 가즈런히 전시하고 싶다.

듣던 음악이나 멍하니 내려다본 바깥풍경에 뇌리를 스치듯 떠오르는 글귀를 찾아 책갈피를 넘길 때마다  그저 행복하겠다.


삶의 변방으로 밀려난다고 해도 난 평안함을 위해 기꺼이 이곳을 선택하겠다. 세상살이에 이리저리 시달리다 지친 들이 찾아오면 내가 준비한 간단한 요기거리와 커피 한잔으로 여유를 되찾는 모습을 보며 난 참 행복하겠다.


먼 훗날 가까운 지인과 가족과 함께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모든 추억이 한가득이 떠도는 이 공간 속에서 조촐하게 마무리하는 선물을 받고 싶다.

이천 년 전 마구간에서 태어난 발가숭이 아기 예수. 세상을 대속하고 벌거벗은 빈 몸으로 죽어간 크라이스트에게 염치 불구하고 반백인 나는 소원을 빌고 있다.


세상의 아이들이 끊임없이 태어난다는 아주 평범한 사건 속에서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생각했다.

 

한나 아렌트는 태어난다는 사실자체가 행위자체를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의 조건이 된다고 봤다. 그녀가 말한 <탄생성, Natality>은 인류가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재탄생하려는 무수한 몸부림이 필요한 존재임을 의미했다.


우리의 인생은 칠레의 이키케에서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건축물 골격만 짓고 나머지는 그들이 돈을 벌어서 완성하게 하는 미완성의 건축물과 닮았다.


인생의 먼 길을 돌아 둥지를 튼 이곳에서 이제는 탄생성을 잘 발휘해서 미완성된 인생의 골조를 따라 잘 마무리하는 그런 꿈을 꾸느라 12월이 되면 아침마다 우리는 그리도 설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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