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택배기사들에게 가장 힘겨운 달이다. 김장철, 절인 배추(줄여서 '절배'라고 하는데 감정이 실려서 '쩔배') 시즌이라서 그렇다. 물론 명절 특수기도 힘들지만 2주 정도면 끝나지만 절배시즌은 한 달 내내 혹은 넘어가기도 한다.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배송해야 할 20kg 절임배추가 다섯, 열, 스물, 서른, 마흔 박스를 채워가면 무게만도 장장 1,000kg, 1톤에 육박한다. 글을 쓰면서도 다시 아찔해진다.
김치는 우리 한국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
그리고 단순한 음식차원을 뛰어넘는 한민족 정서가 깊이 스며있는 '소울푸드'다.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애틋함을 상징하는 대표음식이다. 김장 때마다 장모님께서 젓갈이며 갖은양념을 곁들여 정성스레 김장을 하셨다. 이맘때쯤이면 아들, 딸, 사위, 며느리들이 부지런히 장인장모님 댁을 드나들며 김치를 나르며 노고에 감사하다며 이런저런 정을 나누기도 했다.
이제는 두 분 다 계시지 않아 이젠 김치를 시켜서 먹는다. 시켜 먹는 김치도 맛있다. 하지만 허전함이 생겨나는 건 어찌할 수 없다. 김장김치를 볼 때마다 장모님이, 어머니가 생각나고 짠해진다. 김장하는 힘든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 자식사랑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들이 왁짝지껄하게 김장하며 서로 치대던 모습도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 김장철 김치가 택배를 하면서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절인 배추가 이렇게 무거울 줄 몰랐다. 절인 배추를 받고 나르다가 그 무거움에 쩔어버렸다. 경험 없는 택배기사는 쩔배를 함부로 싣다가 차체가 크게 기울거나 하부차체가 고장 나는 낭패를 당하곤 한다. 가급적 탑차 제일 안쪽에, 그리고 무게를 잘 분산시키기 위해 적절하게 쩔배를 배분해서 실어야 한다. 택배기사도 힘들지만 택배차도 고역이다.
쩔배는 무게도 무겁지만 그 외의 것들로 택배기사를 참 많이 힘겹게 한다.
쩔배나 김장김치를 정신없이 받으면서 가장 신경이 곤두서는 것은 파손으로 내용물이 새어 나오는 경우이다. 다른 상품을 함께 파손시키기에 가장 신경이 쓰인다. 즉시 테이핑을 하거나 비닐 등으로 다시 재포장해야 한다. 테이프, 비닐 등 비품이 더 자주 바닥난다.
간혹 새어 나온 김치국물이 묻은 상품들은 세심하게 닦아내는 등 손길이 더 많이 간다. 그리고 신경이 더 쓰이는 일이 하나 더 있다.
평소보다 독촉전화가 두 배이상 더 쏟아진다. 지금 모두 와서 김치 담그려고 기다리는데 언제 오느냐. 너무 늦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금 찾으러 가면 안 되겠느냐.
솔직히 모든 전화대응에 매달리다 보면 정상적인 배송을 감당할 수 없다. 특히 대부분 고객입장에서의 요구이다 보니 거절하는 경우 감정이 상하고, 감정이 상하면 배송에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나는 가급적 문자로 고객대응을 하며 양해를 구한다. 굳이 통화하기를 요청하시는 고객들은 대부분 강하게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시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자로 상황을 설명드리고 몇 시까지 배송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면 대부분 받아주신다.
배송구역이 아파트라면 엘리베이터가 있어 다행이지만 계단으로 배송해야 하는 지번구역은 참 난감하다.
택배초기시절 쩔배배송에 너무 지쳐버렸다. 무릎이 너무 아팠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5층에 사시는 고객이 쩔배10상자를 시키신 거였다. 계단은 10번을 왕복해야 한다. 함께 나르시던지 아니면 1층 로비에 두고 가겠다고 안내해 드렸다.
택배는 택배기사가 책임지고 배송하는 게 맞다. 하지만 자신이 시킨 무거운 짐을 나르는 택배기사를 도울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세태가 참 야박하고 몰인정스럽다. 계단 10번이 다섯 번이 된다면 그나마 덜 힘들 텐데 말이다.
김장철만 되면 계단 앞에 쩔배박스를 쌓아두고서 고객과 택배기사 간에 시끌시끌 시비가 한바탕 벌어지곤 한다. 김장이 멍들고 사람의 가슴과 무릎도 많이 아파지는 김장철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매년 겪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꼭 절배가 20kg이나 나가야 하는 걸까 싶어 진다.
쩔배를 10kg 미만으로 줄이면 안 되는 걸까.
쩔배는 그렇게 소금물을 가득 채워서 불완전한 종이박스나 스티로폼으로 위태롭게 보내야만 하는 걸까.
가볍게 잘 절여진 다이어티한 쩔배를 생산하는 방법을 왜 연구들을 안 하는 걸까.
대표 K푸드 김치를 가볍게 다이어트시켜 김장철 갈등이 사라지게 하고 택배 평화에 이바지할 또 다른 백 선생 같은 능력자의 출현이 몹시 기다려진다.
몽상을 접고 현실로 되돌아온 택배기사는 소중한 탑차가 기울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애쓰며 차 안 가득히 쩔배를 옮겨 태운다.
부디 쩔배야 12월까지 넘어가서 나타나지 않았으면 한다.
모르겠다. 루돌프 코와 뿔을 붙인 쩔배 상자들이 성탄절이브에 한아름 나타날지도.
막바지 11월에도 부지런히 힘겨운 김장을 담그시느라 애쓰시는 수많은 어머님들께 존경하는 마음을 택배기사는 가슴 깊이 품은 채 힘겨운 쩔배현실과 다시 한번 부딪쳐 보겠습니다만 건강과 살림경제를 생각하셔서 조금씩만 해주셨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